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스스로 동네북 된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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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무슨 은행이 대출해주면서 담보를 챙기나. 그게 돈 장사지 현대식 금융이냐’. 초짜 경제기자 시절 가끔 그런 식의 글을 썼다. 담보보다 고객의 신용 상태를 정교하게 분석해 대출을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다 신용대출을 받은 기업이 부도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반대논리를 세웠다. ‘무슨 은행이 담보도 안 잡고 돈을 빌려주나. 도대체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했나’. 원칙 없이 상황논리에만 따랐던 것이다.

 과거의 부끄러운 경험이 떠오른 건 최근 마구잡이식 은행 때리기를 보면서다. 하기야 은행에 심사가 뒤틀릴 만도 하다. 경제는 어려운데 은행들은 상반기 10조원 가까운 순익을 냈으니 말이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후련하게 은행을 조진다. 서민들의 고통 속에서 은행들은 비싼 이자와 수수료를 챙기며 배를 불렸다는 게 요지다. 여기에 은행원들의 높은 연봉이 대비된다. 이런 논리구조에선 은행은 뭘 해도 나쁜 놈이 된다. 한국판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경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불과 1~2년 전엔 어땠나. 은행들이 돈을 못 번다며 걱정이 많았다. 대출이자로만 먹고살기 때문에 수익구조가 취약하고, 생산성도 낮다고 했다. 그래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해외로 적극 진출하고, 생산성도 높여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결론에 이르곤 했다. ‘금융 수출’이라는 슬로건도 귀에 쟁쟁하다.

 상반기 이익을 뜯어보면 그런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10조원에는 현대건설을 팔고 받은 돈, 바뀐 회계기준 덕에 이익으로 잡힌 돈 등이 섞여 있다. 이런 일회성 이익이 4조5000억원쯤 된다고 한다. 이를 빼면 지난해에 비해 떼돈을 번 건 아니다. 우량은행 축에 끼려면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이 1%는 넘어야 한다고 한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ROA는 0.54%다. 우량해지려면 두 배는 더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못 벌면 왜 못 버느냐, 많이 벌면 왜 많이 버느냐 하며 추궁하는 분들이 꼭 있다. 언제는 우량은행 만들자더니, 요즘 돈 좀 버니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낸다.

 그뿐인가. 서민부담 덜어주자며 대출금리 낮추라고 하면서, 동시에 가계부채를 줄이라 한다. 금리를 낮추면 가계부채는 더 는다. 이를 막으려면 금리를 높이는 게 약이지만, 이때 은행 마진은 더 커진다. 뭐가 더 중요한지는 접어두고 그때그때 조지고 만다.

 잘 버는 은행은 못 버는 은행보다 분명 낫다. 못 버는 은행이 국가경제에 어떤 폐해를 끼치는지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뼈 아프게 겪었다. 물론 은행은 공공성을 지니므로 적당히 벌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얼마가 적정이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감으로 너무 많이 벌면 도둑놈, 못 벌어 망하면 국민경제의 인질범이라고 공격한다.

 은행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은행이 동네북 신세가 된 건 자초한 면이 크다. 가계대출을 자제하라는 당국에 항의하듯 대출을 중단하질 않나, 빚을 앞당겨 갚겠다는 고객에게 계속 중도상환수수료를 물리질 않나…. 조 단위의 이익을 내면서도 야박하게 굴었으니 인심을 얻을 수가 없다. 또 신수종 사업이 중요하다는 말 나온 게 언제인데, 계속 손쉬운 대출영업에 매달려 왔다. ‘뭐가 짭짤하더라’ 하면 우르르 몰리는 쏠림형 경쟁도 여전하다.

 은행들이 여론의 채찍을 피하려면 달리 방도가 없다. 요즘처럼 벌이가 웬만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이익의 여유로움을 상쇄할 필사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은 은행이 더 잘 안다. 하느냐 마느냐, 의지의 문제다. 안이하게 돈 잔치를 벌이다간 어느 돌팔매를 맞을지 모른다. 상생 차원에서 좀 나눠 갖자는 뜻이 절대 아니다. 돈 잘 번다고 칭찬 받는 은행을 보고 싶을 뿐이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