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난개발 종합대책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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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0일 발표한 마구잡이 개발 억제 종합대책은 수십년간 유지해 온 기존 국토이용 체계의 틀 자체를 바꿔서라도 마구잡이 개발의 근본 원인을 뿌리째 뽑겠다는 고단위 처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재산권 침해.아파트 공급 감소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충분한 검토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책의 골자는 마구잡이 개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준농림지제도를 아예 없애고, 전 국토를 개발대상지와 보전대상지로 분류해 개발대상지는 '선(先)계획 후(後)개발' 을 유도하고 보전대상지는 철저히 보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 국토는 도시구역.유보구역.보전구역 등 3개 용도지역으로 재분류된다.

녹지나 준농림지 대부분은 '유보지역' 으로 분류해 주변 여건과 토지 특성에 따라 개발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유럽식 개발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정 규모 이상 개발은 신설되는 지방심의기구나 중앙심의기구의 사전심의도 받아야 한다. 대책 내용대로라면 준농림지가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개발되는 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나선 것은 준농림지제도가 마구잡이 개발에 속수무책일 만큼 허술한 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준농림지역은 도시지역 내 녹지에 비해 건폐율.용적률.아파트 건설 등과 관련한 규제가 훨씬 느슨해 도시외곽 지역의 고층.고밀도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94년 규제완화와 토지이용 효율화를 위해 준농림지 제도를 도입한 뒤 논.밭 한 가운데 아파트가 건설되고 경관 좋은 곳은 속속 음식.숙박업소가 점령하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제도 시행 후 지난해까지 전용된 준농림지가 서울시 면적의 3분의2에 해당하는 4백4㎢에 달한다. 이번 대책은 강도가 워낙 높은 만큼 땅값 등 부동산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끼치는 한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준농림지 소유자 등 관련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구잡이 개발에 대한 비난 여론에 쫓겨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대책을 만드는 바람에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관련법을 통합하고 용도지역을 단순화한다는 방향 설정은 옳지만 졸속으로 시행하다가는 토지이용의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영국의 경우 도시.농촌통합법 시행에 따라 전국의 도시계획을 확정하는 데만 15년이 걸렸다" 면서 "이보다 훨씬 작업이 복잡한 전국토의 용도지역 개편을 3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마무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고 말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개발 수요는 엄연히 존재하는데 인허가 위주의 규제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은 관료적 발상이라는 경고도 있다.

이우종 경원대 교수는 "준농림지를 포함한 기존 용도지역의 토지 특성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새 용도지역에 편입해야만 한다" 며 "대책 내용처럼 용도지역을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이에 따라 인허가 행정을 하다가는 민원이 많아질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심의.인허가 기준을 마련, 자의적인 행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업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대우건설 주택사업부 관계자는 "앞으로 공급물량이 줄어들어 기존 아파트값 상승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고 우려했다.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윤항노 부회장은 "준농림지는 보전이 필요한 곳도 많겠지만 어차피 개발해야 할 부분도 많다" 고 전제, "어쨌든 주택공급 계획에 큰 차질이 있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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