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공기업의 첫 ‘노랑머리’…디자인진흥원 조성용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즘 서울 연건동 대학로 입구의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을 찾은 방문객 중에는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다.

건물 3층 벤처지원 부서에 용무가 있어 들른 민원인들은 명함을 내미는 담당직원이 ‘노랑머리’인 것을 알고 눈을 번쩍 뜨게 되는 것. 얇은 검정색 봄 점퍼의 캐주얼 차림에다 샛노란 머리 모습은 인근 대학로에서 흔히 마주치는 ‘Y세대’를 꼭 빼닮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31세의 조성용씨. 입사 5년차에 결혼까지 한 중견사원이지만 지난 5월 초 느닷없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출근해 주변 선후배 직원들을 아연케 했다. 여기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며칠 뒤엔 또 다른 부서의 30대 초반 직원이 뒤를 좇았다.

산업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이너와 중소업계 디자인 지원을 하는 공공기관. ‘창의성’이 숨쉬는 곳이라 일반 공기업보다는 덜 근엄(?)
한 편이다. 하지만 정부의 주요 공공기관(산업자원부 산하)
에서 자유분방의 상징인 ‘노랑머리’가 등장하자 당연히 직장 내 입방아가 분분했다.

젊은 쪽은 “너무 멋있다. 공기업이라고 튀지 말란 법 있느냐”고 두둔하는 분위기. 하지만 직급이 높을수록 “민원인 접촉이 많은데 품위 문제가 있다”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정보콘텐츠팀의 한 젊은 직원은 사내 통신망에서 趙씨를 거들고 나섰다.

“외국의 한 유명 게임업체는 머리를 염색하면 월급을 5% 더 준대요. 튀는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인데 일단 외모부터 튀는 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회사가 한 거지요.”

하지만 정작 논란의 당사자는 “뭔가 바꿔 보고 싶었다”며 담담한 표정이다.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듯한 직장생활에서 돌파구를 찾고 새로 택한 부서에서 의욕적으로 일해 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중 문득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노랑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두 달된 반려자 박민수씨(27)
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행사 내레이터 모델을 하는 부인은 2년 전까지 같은 직장 비서실에서 일한 적이 있어 이 신혼부부는 사실상 사내 커플이다.

처음엔 당혹스러워했던 부서장도 “노랑머리 만큼 튀는 아이디어로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게 됐다.

사실 그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눠 보면 튄다는 느낌을 그리 주지 않는다. 키 1백72㎝, 몸무게 67㎏의 보통 체구에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전할 줄 아는 범상한 직장인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주변 사람들도 “자기 주장이 강하긴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모나지 않는 성격”이라고 평했다.

趙씨는 지난 4월 말 디자인진흥원이 벤처지원팀을 새로 만들 때 치열한 사내공모 경쟁을 뚫었다. 토익 8백60점으로 영어실력도 뛰어난 편이다.

전북이 고향인 그는 원광대 응용미술과 재학 시절 귀걸이를 하고 다닐 정도로 자유스러움을 즐겼다. 다니던 석사과정을 접고 디자인진흥원에 입사해서도 가끔 튀는 복장 때문에 상사로부터 야단을 맞기도 했다.

적극적인 성격 때문인지 스포츠는 하는 것, 보는 것을 다 좋아한다. 특히 미국 메이저 리그 웬만한 팀의 1∼9번 타자 이름을 줄줄 욀 정도의 야구광.

원래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디자인 지원업무에도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디자인 분야에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벤처기업을 돕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산업디자인은 예술성 못지않게 사업성이 중요한데 디자인 지원 경험이 나중에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코노미스트=홍승일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