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충돌 … 빚 줄인다면서 빚 내서 임대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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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공약을 내걸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9일 서민 전·월세 대책을 내놓았다. 현장을 찾아 공약을 직접 설명하는 프로젝트로 이번이 아홉 번째다. 전체 공약을 관통하는 정책 방향은 ‘행복한 생활특별시를 위한 나경원의 생활공감’이다.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는 이날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약 발표회를 했다. ‘희망은 더하고, 불만은 덜고, 활력은 곱하고, 행복은 나눈다’는 정책방향이다. ‘서울을 바꾸는 희망셈법’이란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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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법부터 다르다. 나 후보는 매일 현장에서 맞춤형 개별 공약을 내는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박 후보는 총괄적인 발표회 방식을 택했다. 당장 잠자고 생활할 집 문제가 양 진영 공약의 첫머리에 올랐다. 나 후보는 비강남권에서 재건축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원·도봉·강서·구로 등에서 1985~1991년 건설된 노후 아파트가 대상이다. 그러나 재건축 요건 완화는 서울시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과속 방지를 내세웠다. 전세보증금센터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사 시기가 맞지 않아 당장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을 경우 시가 전세금을 보증하는 방식이다.

 공공보육시설 확충도 양 진영의 공통된 공약이다. 나 후보는 0~2세 전용 국공립 어린이집을 구별로 네 곳씩 100곳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박 후보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동별로 2개 이상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전체로 하면 872개다. 양측은 그러나 이런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련할지를 제시하지 못했다.

 19조원이 넘는 서울시 부채를 줄이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임기 내에 나 후보는 4조원, 박 후보는 7조원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부족했다. 양측은 빚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공약을 내놔 충돌하기도 했다. 두 후보는 모두 임대주택을 늘리겠다고 했다. 나 후보는 임기 내 5만 가구, 박 후보는 8만 가구다. 하지만 빚을 내 선 투자하는 게 불가피한 임대주택을 늘리면 시의 부채는 늘어나게 된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전한 재정과 복지 확대를 한꺼번에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목표”라며 “임기가 3년도 채 남지 않은 시장이 공약을 실천할 수 있을지 유권자들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전영선 기자, 이성대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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