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멀어진 청춘 다시 느끼게 해 … 보다가 발이 움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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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매니어인 시인 최영미씨가 축구 산문집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냈다. 그는 “축구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만날 수 있는 인간 시장이다. 축구는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판사 이순 제공]

시인 최영미(50)씨. 그는 출발부터 도발적이었다.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거침 없이 구사하며 80년대 운동권의 위선적인 면을 비판했다. 2005년 시집 『돼지들에게』에서는 몇몇 진보인사들을 구체적으로 비난해 ‘문제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축구에 심취했다는 풍문이 들렸다. 빠지지 않는 외모의 여성 시인과 축구.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2002년부터는 신문·잡지 등에 축구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마초적인 남성을 극도로 혐오하는 글을 써온 그가 어쩌다 남성 호르몬 넘치는 경기, 축구에 빠지게 된 걸까.

 그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최씨의 산문집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이순)이다. 본지에 연재한 ‘시인 최영미의 유럽 축구 기행’ 등 10년간 쓴 축구 관련 글을 모은 것이다. 3일 그를 만났다. 그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가는 길이었다. 이날 프로축구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는 4만4000명, 기록적인 관중이 들었다.

 - 거친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그는 신장 170㎝에 가녀린 체구다.)

 “모르는 소리. 아버지가 해방 직후 전국체전에 역도와 투해머 고등부 대표로 출전했던 분이다. 어려서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다했다. 운동신경이 있다. 공부 잘 하는 애 치고는 체력장을 잘했다. 수영 배영을 어깨 너머로 30분 만에 배웠다. 피겨스케이팅도 혼자 연습해 3회전을 돌 정도였다.”

 - 축구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멀리 달아난 청춘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질주하는 젊음이 부러우면서도 보는 순간 젊어진다고 할까.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내가 직접 골을 넣고 싶어 발이 절로 움찔거릴 정도다.”

 -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인간 육체의 순간적인 움직임이 아름답다. 어찌 보면 춤 같다. 물론 승부 자체도 매력적이다.”

 최씨의 축구 지식은 상당하다. 유럽 스타 선수들의 이력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다. 산문집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는 축구 정보를 그득 담은 스포츠 신문이 자신에게는 마약이라고 한다. 상대팀이 두려워 특정 선수를 집중 마크해서는 곤란하다고 하는 대목(134쪽)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안목도 느껴진다.

 - 좋아하는 유럽 프로 리그는.

 “나라별로 특성이 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는 강한 미드필더가 많고, 스페인의 라 리가에는 기술 좋은 공격수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에는 훌륭한 수비수가 많다.”

 - 좋아하는 유럽 팀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좋아한다. 느린 템포로 공을 돌리다가 어느새 상대방 진영으로 치고 들어간다. 영국의 맨유는 속도가 너무 빨라 경기를 음미할 수 없다.”

 - 유럽무대 K 리거 중에서는 누굴 좋아하나.

 “단연 이청용이다. 신세대답게 축구를 즐긴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박지성은 70년대 한국경제를 생각나게 한다. 너무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 K 리그가 지금보다 발전하려면.

 “TV 경기 중계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인조 잔디 말고 천연 잔디 구장도 많이 생겨야 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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