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와 할아버지, 내 얼굴은 두 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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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10면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산문집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늙어 보인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고, 누가 나를 젊게 봐준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평범한 늙은이지만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 나는 글에서도 나잇값을 못하는 평범한 중년이라 누가 사교말로라도 나를 젊게 봐주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청바지와 야구모자 차림으로 외출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참이었는데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 발을 밟고 지나간다. 뒤따라오던 엄마가 아이를 나무란다. “형아 발을 밟으면 어떻게 하니? 죄송해요.” 죄송하다니요?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버스 바닥에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린 동생이 형아를 맘껏 밟을 수 있게 말이다.

버스에 내려 집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기분이 좋았을까? 그것이 순전히 아이 엄마의 착각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나는 정말 아저씨가 아니라 형아가 되고 싶은 것일까.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쁜 것일까. 기분이 좋아진 것이야말로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방증 아닐까. 주름을 없애는 필러성형을 한 중년 연예인의 팽팽한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느니 주름은 시간이 선물한 우아한 무늬이고 결이라고 떠든 사람은 누구였던가.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숱 없는 머리가 스산하다. 오른쪽 속눈썹 하나가 하얗게 센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수염에도 벌써 겨울이 찾아와 눈꽃이 피었다. 눈 밑에는 마치 조각칼로 판 것처럼 굵고 깊은 주름이 마구 새겨져 있다. 조각칼로 가슴을 찢는 것 같다. 축 처진 눈 밑 지방주머니가 고약해 보인다.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예전에는 경험이 중요했을 것이다. 늙은 사람은 곧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늙은이는 젊은이의 좋은 선생이었을 것이다. 젊은이에게 노인은 지혜로워 보였을 것이다. 세상이 빨리 변하기 시작하자 경험은 쓸모가 없어졌다. 경험은 단종된 구형 모델의 제품설명서 신세가 된다. 사리에 밝고 지혜로웠던 노인은 이제 ‘그것도 하나 할 줄 모르는’, 할 줄 아는 건 고루하고 답답한 말씀뿐인, 그저 나이만 많은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젊게 보이려는 것 아닐까. 눈가 주름을 없애는 크림을 바르고 보톡스를 맞고 필러성형을 하는 것 아닐까. 청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쓰는 것 아닐까. 어쩌다 “동안이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나잇값도 못하고 온종일 히죽히죽 웃는 것 아닐까.

나는 내 늙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주름과 센 머리카락을 긍정하기로 했다. 긍정의 힘이 발휘된 것인지 내 결심을 세상도 알아준다. 얼마 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 엄마와 함께 온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장난이 심했다.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기도 하고 식당 물건들을 함부로 어질러놓기도 했다. 내 눈치를 보며 엄마가 아이를 야단치는 말이 이랬다. “너 자꾸 까불면 여기 할아버지가 이놈! 하신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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