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텍, 노벨상 31명 비결은 ‘캠퍼스 나무 밑 칠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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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대학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칼텍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모두 2126명으로 ‘소수 정예’ 대학이다. 지난 3일 오전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교정으로 나오고 있다. 캠퍼스 내에 전시된 ‘플레밍 대포’는 매년 학위 수여식 때 사용되는 칼텍의 상징물이다. [패서디나(캘리포니아주)=LA 중앙일보 신현식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이하 칼텍). 물리학과 4학년 조시 웨이든은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카페테리아를 가던 중 청바지 차림의 턱수염이 하얀 노년 남성과 마주쳤다. “하이(안녕)”라고 인사하자 그 남성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웨이든은 기자에게 “저 교수님이 누군지 아세요. (2005년에 유기 화합물 합성 방법으로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인 로버트 그럽스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책이나 유명 과학 잡지 등에서만 볼 수 있던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줘 공부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세계대학평가에서 1위에 오른 칼텍은 노벨상 수상자만 31명을 배출한 이공계열 중심 특성화대학이다. 칼텍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생 수(학부와 대학원 합친 총 재학생 2126명)가 적어 교수와 학생이 서로 다 알 정도”라며 “격의 없이 소통하며 공부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캠퍼스 곳곳의 큰 나무 밑이나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그늘에는 예외 없이 칠판이 있다. 칠판엔 화학 공식 등이 적혀 있거나 모형을 복잡하게 그린 흔적들이 있었다. 건물 벽 곳곳에도 칠판이 붙어 있었다. 칠판은 ‘나 홀로 뛰어난 수재’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팀워크 수재들’이란 칼텍의 정신을 담고 있다. 칼텍 한인학생회 회장인 안형준(30·응용수학 박사과정)씨는 “어디서든 힘을 합쳐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학업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것이 칼텍의 숨은 힘”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칼텍은 현장 연구가 강하다. 학부생들은 ‘여름 연구 지원제도(SURF·Summer Undergraduate Research Fellowship)’를 통해 10주간 교수·대학원생들과 연구에 참여하고 논문도 쓴다. 책상머리에서 벗어나 일찍 현장 연구를 체험하는 것이다.

 칼텍의 연구소 40여 곳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따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지원한 금액이 3억1529만 달러(3755억여원)이나 됐다. 전임 교수 한 명당 연구비가 75만 달러(8억9000여만원)로 하버드대 교수 한 명당 연구비(31만3500달러)의 두 배였다. 칼텍은 이런 외부 연구비에 힘입어 1위로 뛰어올랐다.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대학들이 이번 평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연구중심 대학인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대는 지난해 11위에서 9위로 상승하며 톱10에 진입했다. 조지아공과대(24위)는 3계단 올랐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169위)가 5계단 뛰어 올랐다. 필 배티 더 타임스 세계대학평가 편집장은 “학교 규모에 따른 양적 결과를 가급적 배제하고 질적 경쟁력에 초점을 맞췄다”며 “선택과 집중을 한 대학의 강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평가팀=강홍준 차장(팀장), 최선욱·강신후 기자, LA 중앙일보=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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