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 거스르지 않는 조화 … 초가 본뜬 □자 공동체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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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미를 극대화한 선(禪)실 내부. 왼쪽 벽은 유리문으로 마감해 멀리 캐츠킬 산이 바라보이게 했다. 정면과 오른쪽 아래 얇고 긴 창을 내 그늘을 없애고 바깥과 소통하게 했다. [한라한마이어스 설계사무소 제공]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서북쪽으로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뉴욕주 클래버랙(Claverack). 네덜란드어로 클로버로 뒤덮인 들이란 뜻이다. 23번 국도를 달리다 문득 ‘원다르마(圓Dharma)센터’라는 낯선 푯말과 마주친다. 25개의 지부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한 원불교 미주본부가 들어선 곳이다. 이곳에 들어선 방문객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자갈길이 이끌어간 곳엔 성냥갑 모양의 목조건물 다섯 동만 눈에 들어온다. 지극히 ‘겸손한’ 건물들이다. 그런데 원다르마센터는 지난해 미 건축가협회(AIA)가 주는 종교·영성 관련 디자인상을 받았다. 지난 5월 AIA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연 전람회에서도 단연 화제가 됐다. 센터 디자인을 기획한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설명기 교수는 “원다르마센터는 종교 건축의 새 지평을 연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인 비탈의 곡선을 살린 숙소 . 건물 바깥에 설치한 부챗살 모양 나무빔은 직사광선과 바람을 막는 한편 나무숲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과 하나된 집=건물은 산등성이 곡선을 따라 나선형으로 배치됐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비탈의 곡선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이자 프랫 인스티튜트 교수인 토머스 한라한(Thomas Hanrahan)은 “원불교는 자연을 경외한다”며 “건물 배치에도 이를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숙소동의 처마 끝 각도까지 산의 곡선을 해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건물 높이도 치밀하게 계산했다. 맨 앞 선(禪)실의 지붕 높이는 바로 뒤 근무자 숙소동의 테라스 높이와 같게 맞췄다. 테라스에서 서쪽을 내려다보면 선실 지붕이 멀리 캐츠킬 산을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교당에선 환경과 생명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건물은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짓는다면 이율배반”이라며 “종교 건물은 그 자체가 가르침의 일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자급자족=선실을 제외한 4개 동 지붕에 설치된 태양열 집열판으로 온수를 해결했다. 사무동과 연결한 지열 집열판을 통해선 1년 내내 섭씨 11도의 물을 얻는다. 겨울엔 난방, 여름엔 냉방 효과를 내는 물이다. 한라한은 “마지막 단계로 연 22만㎾h의 전력을 생산할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라며 “이 공사만 마무리되면 에너지를 100% 자급자족하는 것은 물론 남는 전력을 외부에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건물엔 온돌 난방 방식이 채택됐다. 프랫 인스티튜트 피터 버나 교무처장은 “온돌 난방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 효율이 좋아 깜짝 놀랐다”며 “더운 바람을 사람에게 직접 쏘는 기존 미국식 난방은 참선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빛의 미학=한라한마이어스 건축사무소의 빅토리아 마이어스는 “설계팀이 가장 신경 쓴 건 조명이었다”고 말했다. 센터 안에선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눈이 침침해지거나 부시지 않는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이마저도 직사광선이 아닌 반사광선이기 때문이다. 빛 조절의 열쇠는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부챗살 모양의 나무빔이다. 이 빔은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그늘을 만들어 마치 나무숲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실의 서쪽 벽은 거의 전체가 유리로 마감돼있다. 고개만 들면 멀리 캐츠킬 산이 바라보인다. 건물 안에 있는데 바깥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설 교수는 “안과 밖의 구분을 뛰어넘는 게 참선”이라며 “선실에 크고 작은 창문을 곳곳에 낸 건 자연과의 소통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를 설계한 한라한 교수(왼쪽)와 기획자 설명기 교수.

◆초가집에서 따온 공동체 구조=설계 전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던 한라한 교수는 초가집에 매료됐다. 소박하고 나지막한 집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공동체를 이루는 구조가 그에겐 참신했다. 이는 센터 설계에 그대로 반영됐다. 5동의 건물은 2층인 근무자 숙소동을 빼고는 모두 단층이다. 집 한가운데 안마당을 두는 초가집의 ‘ㅁ’자 구조도 그대로 따왔다. 설 교수는 “전통 한옥에선 방이 안마당을 둘러싸고 돌아가며 배치돼 건너편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며 “공동체를 강조하는 원불교 정신에 이 같은 구조가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원다르마센터를 나무와 돌로만 지은 것도 지역사회에 동화하려는 의도에서다. 나무와 돌은 지역에서 대부분 현지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산 대리석과 같은 수입 재료를 일절 쓰지 않은 건 물론이다.

뉴욕·클래버랙(뉴욕주)=정경민 특파원

◆원다르마센터(wondharmacenter.org)=원불교 미주 포교활동을 총괄 지휘할 본부로 지난 2일(현지시간) 공식 개원했다. 미국 뉴욕주 클래버랙에 자리 잡았다. 다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진리를 뜻한다. 2962㎡ 부지에 5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 미 건축가협회(AIA)가 주는 종교·영성 부문 디자인상을 수상한 토머스 한라한 교수가 설계했다. 조경은 호암미술관·영종도 신공항 등을 디자인한 ㈜서안 정영선 대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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