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남근 모양 나무토막에 숨겨진 글자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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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근 모양 목간. 백제 6세기 중엽, 충남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적외선 판독을 하니 ‘입입입(立立立)’ 이란 먹글씨가 확인됐다. 도교 신앙 혹은 토착 신앙의 상징물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문맹률은 1.7%다(2008년 국립국어원 조사 결과). 전세계 평균 문맹률이 20%임을 감안하면 한글의 우수성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글을 쓰기까지, 우리 선조들도 난해한 문자를 붙들고 오랫동안 씨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고대 문자전 ‘문자, 그 이후’를 5일 개막했다. 고대 문자 자료 500여 건을 통해 암각화부터 한자를 우리 식으로 변용한 이두에 이르는 한글 이전 시대 문자의 역사를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광개토대왕비 원석탁본’이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큰(높이 6.39m) 비석이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이 비석의 탁본은 중국 청나라 말기 호사가들이 눈독 들이는 수집품이었다.

 그러나 비면(碑面)이 닳아 보이지 않는 글자 때문에 탁본 값이 오르지 않자 탁공들은 1890년대 초 비면에 석회를 발라 글자 획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글자가 왜곡되기도 했다. 석회를 바르기 이전에 뜬 원석 탁본은 전세계에 단 10여 점 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번 전시에는 원석 탁본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 받는 일본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본이 나왔다.

 일본 왕실의 유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정창원) 문서도 눈길을 끈다.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불경 두루마리 속지로 재활용됐다가 우연히 발견된 신라촌락문서(복제본) 등을 볼 수 있다. 가구를 빈부에 따라 9등급으로 구분하고 남·녀, 나이별로 나눠 논과 밭, 소와 말, 뽕나무의 수 등을 기록했다. 신라가 이를 세금과 부역을 부과하는 기준으로 삼았음을 짐작케 하는 문서다.

 통치 수단으로 사용되던 문자는 점점 민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수리와 몸통에 못이 꽂힌 채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주술용 나무 인형, 7~9세기 부적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무) 등은 당시 민중의 신앙을 짐작하게 한다. 가장 원초적인 문자 자료는 충남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6세기 중엽 남근형 목간이다. 먹글씨로 설 립(立)자를 세 번이나 써 풀이하면 “서라! 서라! 서라!”가 된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 출토 붓(6세기), 석가탑 출토 먹, 백제 먹조각 등 유서 깊은 문방구도 나왔다. 다만 고대 문자 세계의 모든 걸 보여주려는 듯 욕심을 낸 전시라 다분히 학술적이다. 도슨트의 전시 설명을 꼭 챙겨듣길 권한다. 10월 한 달간은 매주 수요일 저녁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마련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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