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와 영화

중앙일보

입력

80년 광주는 우리의 '현재'를 결정짓는 하나의 사건이자 이미지였다. 군사정권 하에서 그 비극의 경험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전달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5월이 오면 거리에선 늘 시가전이 벌어졌고, 전단, 팜플렛, 사진, 외국에서 제작된 비디오, 그리고 개인적인 증언을 통해 80년 광주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80년 광주는 또한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늘 되묻게 하는 사건이자 이미지였다. 관제 언론은 80년 광주를 극렬 분자들이 저지른 '사태'로 몽타주화 했다. 단지 거리에서만 진실이 존재했던 시절 몇 장의 스틸 사진으로 몽타주화 된 80년 광주를 온전하게 카메라에 담으려는 첫 시도는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16mm영화였던 〈오! 꿈의 나라〉(1988)를 제외한다면 광주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영화(극영화)는 세 편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1990)는 80년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야학 강학 박기순 등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광주라는 도시를 바탕으로 벌어졌던 항쟁을 역사적으로 재현하면서도 역사적 순간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들의 삶이 보여주었던 숭고함과 비극성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 검열로 인해 많은 장면이 삭제되어 개봉되었고 의도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예상치 않게 80년 5월은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냈다. 80년 광주를 부분적으로 이슈화했던 〈모래시계〉가 95년 벽두부터 TV를 통해 방영됐고 이것은 경이적인 시청률(평균 시청률 45%)을 보여주었다. 사실 〈모래시계〉에서 재현된 80년 광주는 단지 현대사를 통해 자행된 정치적 폭력의 한 순간에 다름 아니었다. 폭력의 스케일, 폭력의 강도가 그 어느 순간보다도 크고 강했을 뿐 광주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모래시계〉에서 퇴색해 버렸다.

〈모래시계〉가 폭력을 극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역사로서의 광주가 갖고 있는 의미를 스펙타클의 연대기로 극화했다면, 그 다음해 장선우 감독이 만든 〈꽃잎〉(1996)은 그 반대의 지점에서 80년 광주를 파편화된 기억의 흔적들로 다층화한다.

〈꽃잎〉은 80년 광주를 다루면서도 광주를 역사로서 구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80년 광주는 〈부활의 노래〉에서처럼 '민주 항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한 소녀의 '비극' 혹은 '상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잎〉은 또한 역사를 재구성한다. 왜냐하면 공식화된 역사와는 다른 차원, 즉 사적이고 대중적인 기억의 차원에서 역사가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를 찾아 다니는 '우리들'은 끝내 80년 광주에서의 학살로 인해 상처 입은 소녀를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발견하는 것은 단지 그녀를 잠시 스쳤던 사람들이 털어놓는 '기억들'이다.

이러한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역사는 희생자뿐만 아니라 일종의 가해자였던 개인의 삶과도 관련된다. 이창동 감독이 만든 〈박하사탕〉(2000)에서 80년 광주는 진압군이었던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보여진다. 〈박하사탕〉에서 개인은 역사적 순간 권력의 힘에 의해 구성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는 80년에 군인이었지만 '진압군'일 수밖에 없었고, 80년대 중반에는 경찰이었지만 운동권 학생을 고문하는 '고문경찰'이었다. 한 개인을 진압군으로 혹은 고문경관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80년대에 개인적인 삶은 역사와 분리될 수 없었고, 공적인 기억(80년 광주 항쟁, 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개인적인 기억과 분리 불가능한 것이었다. 〈박하사탕〉은 그런 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인(주관적인) 리얼리티만을 강조하는 90년대의 삶을 79-80년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순수했던 시절은 늘 개인적인 삶과 역사가 충돌했던 때가 아니었던가?

영화는 결코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 스크린 위에서 뿐만 아니라 그 뒤에서 현실의 힘들이(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간에) 개입하고 간섭하며 이미지들을 변형시킨다. 그래서 영화 이미지에는 지난 시절 어떻게 사람들이 싸워 왔는가가 분노와 열망, 공포와 탄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80년 광주 민주항쟁은 이제 20주년을 맞이했다. 새롭게 광주 민주항쟁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여러 군데서 진행중이다. 이제 영화 또한 어떻게 대중적 기억을 보존하고 재구성하면서 대항 역사의 터전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