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원작 〈첼로켜는 고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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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일본 최고의 동화작가)의 원작을 뛰어난 그림과 음악으로 충실하게 이루어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작화 전문인 오(OH) 프로덕션이 6년에 걸쳐 독립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에서의 서정적인 전원풍경이 수묵화풍의 배경미술로 표현돼 화면 곳곳에 시정을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으로 극장공개까지 이뤄낸 혼신의 야심작이기도 하다.원작의 주인공을 새로운 초점으로 맞추고,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추구했다.

연주회의 곡목인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테마곡으로 하여 음악과 화면의 조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원화와 수묵화풍의 배경미술은 각각 한 사람에 의해서만 작업이 될 정도로 장인정신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다카하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작으로, 공개된 해에 마이니치 영화 콩쿨 오후지상을 수상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7애니엑스포'에서 정식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어느 시골악단의 가장 실력이 없는 젊은 첼로연주자 고슈가 밤마다 첼로 연습을 하던 중 집으로 찾아오는 동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뛰어난 연주자가 되기까지 정적이지만 위트 있게 그리고 있다.

조그만 시골 마을의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는 고슈는 지휘자로부터 엄한 꾸짖음을 받고 괴로워한다.
그날 밤 늦게 첼로를 등에 지고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래야 마을 외딴 곳의 강가에 있는 부서진 물방앗간 오두막집이다.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살면서 오전에는 오두막 주위의 작은 밭에서 토마토 가지를 자르기도 하고 양배추의 벌레를 잡기도 하다가 정오가 지나면 출근한다. 고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을 켜고 첼로를 마루 위에 살짝 놓고 선반에서 컵을 꺼내 물통의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머리를 한번 흔들고 의자에 앉아 마치 호랑이 같은 기세로 낮의 그 악보를 켜기 시작했다.

악보를 넘기면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켜고는 또 다시 처음부터 몇 번을 되풀이했다. 한 밤중이 지나버리고 나중에는 이제 자신이 켜고 있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눈이 충혈되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이때 누군가 뒷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대 여섯번 본적이 있는 삼색 털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

고양이는 고슈의 밭에서 따온 반쯤 익은 토마토를 선물이라며 고슈 앞에 내려 놓았다. 고슈는 낮부터 시작된 언짢았던 기분을 화풀이하며 당장 나가라고 했지만 고양이는 등을 굽혀 눈을 내려 깔고있다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슈만의 트로메라이를 켜주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슈가 화가 치밀어 이 건방진 고양이를 어떻게 해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고양이는 고슈의 음악을 듣지않으면 잠이 오지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고슈는 문에 열쇠를 걸고 창문도 모두 닫아 버리고 나서 첼로를 꺼내고 등불을 껐다. 그러자 달빛이 방안에 반쯤 들어왔다.

그리고 뭘 생각했는지 우선 손수건을 찢어 자신의 귀를 꼭 막고 나서 마치 폭풍과 같은 기세로 '인도의 호랑이 사냥' 이라고 곡을 켜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한동안 목을 숙여 듣다가 갑자기 눈을 깜빡 거리더니 얼른 문쪽으로 뛰어 물러서고 갑자기 '쿵' 하고 문에 몸을 부딪쳤다. 고양이는 큰 실수를 한 듯 당황해서 눈과 이마에서 번쩍하고 불꽃을 낸다. 그리고는 입 주위의 수염과 코에서도 나와 간지러워 하며 한동안 재채기를 할 듯 하다가 잠시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고슈는 너무 재미있어 하며 점점 기세 좋게 연주를 해댔다.

고양이는 이제 충분하니 그만 해달라고 하고 고슈의 연주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화가난 고슈는 이제부터 호랑이를 잡는 대목이라며 더 힘있게 첼로를 켰다. 고양이는 괴로워서 펄쩍 뛰어올라 돌기도 하고 벽에 몸을 벽에 부딪혀서 한동안 파랗게 불거졌다. 고슈도 좀 어지러워서 이제서야 그만두었다.

이에, 고양이가 태연한 척 천연덕스럽게 오늘 밤 연주가 평소와 다르다고 말을 하자 고슈는 또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렇지않게 잎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을 하나 꺼내며, 고양이가 놀리듯이 긴 혀를 내밀자, 성냥을 혀로 그어 켜서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고양이는 놀라 혀를 풍차처럼 돌리면서 입구의 문 쪽에 부딪쳐 비틀거리다 다시 돌아와서 또 부딪치고는 비틀비틀 도망 갈 궁리를 했다. 한동안 재미있게 보고 있던 고슈가 문을 열었을 때, 고양이는 바람처럼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웃다가 후련해 하며 편히 잠들었다.

뻐꾸기

다음날 저녁도 집으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어제처럼 요란스럽게 첼로를 연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지붕 밑을 두드렸다. 갑자기 천장의 구멍에서 똑하고 소리가 나더니 회색 새 한 마리가 내려 왔다. 뻐꾸기다.

뻐꾸기가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하고 고슈는 뻐꾹뻐꾹 하는 것 뿐인데 무얼 배우겠느냐고 물었다. 뻐꾸기는 당신은 모르겠지만, 우린 뻐꾹하고 만번 울면 만번 모두 다른 것을 안다고 매우 진지하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도레미파를 가르쳐 달라는 뻐꾸기의 말에 귀찮아서 세번만 하고 돌아가라고 말하고는 첼로를 집어들고 가볍게 줄을 맞추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켰다.

그러자 뻐꾸기는 당황해서 날개를 푸드득거리면서 틀리다고 하고는 "뻐꾹" 하고 한번 울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는 도레미파도 제 6번 교향곡도 똑 같은 것이 아니냐고 고슈가 묻자, 그렇지않고 어려운 것은 이것을 많이 계속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슈는 첼로를 잡고 뻐꾹뻐꾹하며 계속해서 켰다. 그러자 뻐꾸기는 매우 기뻐하며 중간부터 뻐꾹뻐꾹하고 따라 외쳤다. 고슈가 손이 아파서 멈추자 뻐꾸기는 섭섭한 듯 울고 있다가 멈추었다. 너무 화가난 고슈가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하자, 뻐꾸기는 고슈가 켜는 것은 괜찮은 것 같지만 조금 틀리 다며 다시 한번 켜달라고 부탁했다.

뻐꾸기의 간절한 부탁으로 고슈가 쓴웃음을 지으며 켜기 시작하자, 뻐꾸기는 열중해서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고슈는 처음엔 짜증이 났으나 계속 켜는 사이 왠지 새 쪽이 진짜 도레미파에 맞는 것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켜면 켤수록 뻐꾸기쪽이 낫다는 느낌이 들어서 갑자기 첼로연주를 그만 두었다. 그러자 뻐꾸기는 원망스러운 듯이 고슈를 보고 왜 그만두냐면서 우리들이라면 아무리 의지가 부족한 녀석이라도 목에서 피가 나올 때 까지 외친다고 말했다.

화가 난 고슈가 벌써 날이 샌다며 나가라고 하자, 뻐꾸기는 해가 나올 때까지만 하자고 했다. 하지만 고슈는 뻐꾸기에게 잔뜩 겁을 주었다. 이에 놀란 듯 뻐꾸기가 급히 창문을 향해 날아올랐다가 유리에 심하게 부딪쳐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 후 몇 번 반복하다 겨우 밖으로 날아갔을 때 고슈는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잠들어 버렸다.

새끼너구리

다음날도 밤늦게까지 연습하다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새끼너구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고슈가 매우 좋은 사람이고 무섭지 않기 때문에 가서 배우고 오라고 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전했다. 뭘 배우려는 지의 물음에 자기는 작은 북 담당이고 첼로와 맞추어 보고싶다고 말을 한 뒤 등뒤에서 막대기를 꺼내고 악보 한 장을 꺼내보이면서 '유쾌한 마차가게'를 켜달라고 말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새끼너구리는 막대기를 가지고 첼로의 줄을 받치고 있는 브리지(Bridge)아래 부근을 박자에 맞추어서 둥둥 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솜씨로 연주하던 도중 새끼너구리는 두 번째 줄을 켤 때 이상하게 느리다고 말을 했다. 그렇지않아도 그 줄을 켤 때면 조금 지나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터라 고슈는 깜짝 놀랐다. 그 뒤에 다시 한번 연주를 하고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새끼너구리는 허둥대며 악보랑 막대기를 등에지고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나갔다. 고슈는 우두커니 한동안 바라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들쥐

다음날 밤도 밤새도록 첼로를 켜고 새벽녘까지 정신없이 첼로를 쥔 채 졸고 있을 때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들쥐 한 마리가 작은 새끼를 데리고 들어왔다.

자기 아이가 건강이 좋지않아 죽을 것 같으니 고쳐달라는 황당한 말에 고슈는 약간 화가 났으나 토끼의 할머니와 너구리의 아버지 등이 나았다는 어미의 말에 어이없어 새끼 쥐만 내려보고 웃었다. 그러나 계속 이야기를 듣던 도중 자기의 첼로 켜는 소리에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고 그 새끼 쥐에게 연주를 해주었다. 그리고 연주를 거의 마쳤을 때 새끼 쥐와 어미 쥐는 좋아졌다며 자꾸만 인사를 했다. 고슈는 뭔가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빵 한 조각을 뜯어서 들쥐에게 주자 들쥐는 아주 소중한 듯 빵을 입에 물고 나갔다.

그로부터 6일째 밤이었습니다. 금성 음악 단은 제6번 교향곡을 잘 연주해냈습니다. 홀에서는 박수소리가 아주 크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앵콜을 외치게 되고 이에 고슈가 앵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고슈가 그 구멍이 뚫린 첼로를 가지고 무대로 나오자 사람들은 보란 듯이 더 세게 박수를 쳤다. 고슈는 아주 침착하게 무대의 한가운데로 나갔다. 그리고 나서 고양이가 왔을 때처럼 강렬하게 '호랑이 사냥'을 켰다.

청중이 조용히 열심히 듣고 있자 고슈는 계속해서 켰다. 고양이가 괴로워하며 불꽃을 냈던 곳도 지나고 문에 부딪쳤던 곳도 지났다. 곡이 끝나자 고슈는 풀이 죽어 고양이처럼 재빨리 첼로를 들고 무대 뒤로 들어가버렸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사람들 사이로 재빨리 나와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에 아주 좋았다는 악장의 말을 듣고, 동료들도 모두 좋았다고 말을 했다. 그날 밤늦게 고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뻐꾸기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결국, 자신을 귀찮게 굴었던 밤 방문객들과의 시간 속에서 고슈는 자신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자꾸 미루고 현실에 비관만 하며 안주해 버리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노력과 남의 충고를 잘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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