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달라" 세계 최고 '큰손' 서울서 비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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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숙소 찾아 서울서 인천으로 중국 국경절인 10·1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요우커들이 28일 저마다 쇼핑백을 가득 채운 채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한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에서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은 탓에 이들은 오전 7시에 일정을 시작, 경복궁·동대문·명동 등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뒤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강정현 기자]


“투어가 끝난 시간이 저녁 7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숙소로 이동하니 밤 9시다. 다음 날 일정도 아침 7시에 시작했다. 서울과의 거리가 먼 탓이다. 이런 관광은 다신 하고 싶지 않다.”

 톈진(天津)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는 쩡옌(曾炎·52)이 들려준 한국 관광 체험담이다.

 “교외 숙소에 도착해 보니 야릇한 불빛으로 치장한 곳이다. 주변에 술집과 가라오케가 있다. 밤 늦도록 소음이 이어졌다. 여행 온 기분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다롄(大連)에서 온 아이리리(艾麗麗·女·38)의 한국 인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요우커(遊客-중국 관광객)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이처럼 시설이 빈약해도 몰려들기 때문이다. 세계를 걷는 요우커는 매년 500만 명씩 늘고 있다. 이번 중국 국경절(10·1절) 연휴 기간, 7만 명 정도가 한국을 찾는다. 중요한 건 질(質)이다. 깃발 대신 여행 책을 든 개별 관광객(FIT)이 늘었다. 씀씀이도 크다. 외국 관광객 가운데 으뜸이다. 전체 요우커(5400만 명)의 10%만 유치(지난해 경우 3.5%)해도 100억 달러는 거뜬하다.

 문제는 호텔 부족이다. 지난해 10·1절에는 수천 명이 교외로 이동했다. 올해도 절반 이상은 경기도에서 묵는다. 서울 호텔은 일찌감치 동났다. 서울 도심 주변에 중·저가 호텔을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요우커 현황과 대책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이번 주말 요우커 1000명이 밀려온다. 요우커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들고 있다.”

 모두투어 인터내셔널 임광호 과장은 연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라는 말을 반복했다. 중국전문 여행사인 화방관광의 이형근 이사는 “호텔 사정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며 “이번에 서울과 인근 지역을 관광하는 55개 팀 가운데 25개 팀은 경기도에서 묵어야 한다”고 전했다. 내일관광여행의 중국 담당자도 “이번 10·1절에 오는 500명 가운데 70%는 경기도 호텔을 이용한다”며 “서울 내 호텔에 묵으려면 3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방관광 이 이사는 “서울에 방이 없어 경기도로 가야 한다고 안내하면 부유층에 속하는 15% 정도는 계약을 취소한다”며 “호텔만 많았다면 더 많은 요우커를 유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15만원 정도의 방도 좋다. 우린 싸구려가 아니다. 방을 달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요우커들이 많다”며 “요우커는 아무 데나 재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요우커의 질(質)도 달라졌다. 단체 관광에서 선진국형 개별 관광으로 진화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올 상반기 발급한 비자의 절반 이상이 개별 비자다. 단체 비자는 지난해보다 5.5% 줄었지만 개별 비자는 92% 늘었다. 개별 관광객은 단체 관광객보다 돈을 더 쓰기 때문에 관광업계에서 ‘노다지’로 통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특2급 이상의 고급 호텔에서 묵는다.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고급스럽고 호젓한 곳을 찾는 것이 이들 개별 관광 요우커의 특징이다.

 요우커의 씀씀이는 세계 최고다. 서울시 조사 결과 요우커의 올해 평균 지출액(교통비 포함)은 2195 달러로, 일본보다 550달러 정도 많다. 하나투어 중국사업부 박장진 과장은 “자유시간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요우커가 늘고 있다”며 “항공권과 호텔만 예약하는 선진국형 자유 여행이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관광 인프라도 문제다. 요우커 취향에 맞는 상품 개발이나 인프라 구축에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중국 현지의 중산층을 겨냥한 1:1 마케팅은 전무하다. 현지 포털을 통한 광고도 없다. 소관 부처도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협회 등 여럿이다. 관광진흥협회 관계자는 “도로 표지판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지자체와 협의해야 한다”며 “효율적이고 통일적인 관광정책을 위해서는 행정체계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관광청 같은 단일 통제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요우커(遊客)=관광객을 통칭하는 중국어. 국내 관광객은 통상 ‘뤼커’(旅客)라고 부른다. 국내 여행업계에서 요우커는 ‘중국인 관광객’을 특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탐사기획부문=이승녕·고성표·박민제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위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산업부=박혜민·정선언 기자, JES 여행레저팀=홍지연 기자, 사진=변선구·강정현·신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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