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감축 목표 예산 짠 한국 … 미·그리스보다 현명한 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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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외신의 한국 경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재정적자를 줄인 한국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현명한 대처”라고 평가하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경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은 ‘유럽이 추락하고 있지만 한국은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Korea Battens Down Hatches as Europe Crashes)’는 27일자 칼럼에서 “한국이 급속하게 악화하는 유럽 재정위기에서 힌트를 얻고 있다”고 썼다. 그는 “한국은 유럽 재정위기 악화를 고려해 내년 적자 감축을 목표로 예산을 짰으며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이는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페섹은 “제2의 금융위기가 닥쳐도 한국은 맞설 수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다시 위기 가능성이 점쳐지는 현시점에 재정 부문에서 위기를 준비하는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다”고 한국 정부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그리스나 미국 정부와 달리 한국은 행동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의 모범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제3의 방안: 거시건전화 정책(The third arm: Macroprudential policy)’ 기사에서 “한국은 거시건전화 정책을 통화정책과 함께 사용해 주택가격 안정에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 FT는 2008년 당시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 등의 기사로 한국 경제 위기론을 집중 조명했었다.

 외신의 한국 평가가 왜 좋아졌을까. 김영민 기획재정부 외신대변인은 “기본적으로 2008년 당시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외신의 한국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미 두 차례의 위기를 경험한 국내 언론은 경계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2008년에는 펀더멘털을 강조했던 정부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2008년과는 내외신 분위기가 반대로 바뀐 것이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2008년엔 갓 출범한 정부와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주체의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는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주재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금융시장 급변동에 따른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3차 방어선’ ‘최정예부대’ 등의 표현까지 쓰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는 “부정적인 지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긍정적 지표에는 의구심을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가세해 우리가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어두운 밤에는 구슬 색이 파란지 빨간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해가 뜨면 그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된다”며 “유럽 재정위기처럼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국면에서는 똑같은 지표를 봐도 부정적인 지표가 더 커 보이고 긍정적인 지표는 작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파장에 대비해 ‘3차 방어선’까지 든든하게 마련을 했고 최정예부대가 지키고 있다”며 “따라서 근거 없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으며 정부를 믿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매진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은행들이 준비를 잘해) 지금부터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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