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에 떨고 있는 중동 기독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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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동 지역은 무슬림(이슬람교도)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온 기독교도도 적지 않다. 로마 교황청은 이집트에서 이란에 이르는 중동지역 거주 기독교도 수를 17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올해 초부터 불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정적으론 무차별 진압에 나선 독재정권에 반대하지만 내심 정권 붕괴 뒤 다수 무슬림이 자신들을 탄압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동안 독재정권이 힘으로 종교 갈등을 눌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 소수 계층인 기독교도들이 바샤르 알아사드(46) 정권이 붕괴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국민 다수가 이슬람 수니파(74%)다.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11%) 출신 알아사드는 부족한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기독교인(10%)들을 상대적으로 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알아사드가 퇴진할 경우 정권 차원의 보호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다. 보수적인 수니파 무슬림들의 정치적 입김이 세지면 자신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리아의 반정부 집회에선 공공연히 “기독교인은 베이루트(레바논 수도) , 알라위파는 관 속으로”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중동 내 기독교도들은 독재정권 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다 독재자의 몰락 뒤 무슬림 주민과 충돌해 피해를 보았다. 이라크에선 2003년 사담 후세인이 몰락한 뒤 기독교도에 대한 테러가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바그다드의 한 교회에선 총격 테러로 신자 51명과 목회자 2명이 숨졌다. 위협을 견디지 못한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은 인근 요르단과 시리아·레바논 등지로 도망치고 있다. 후세인 정권 붕괴 전 약 150만 명을 헤아리던 기독교도 숫자는 지금 약 40만 명까지 줄었다.

 이집트에선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몰락 뒤 이슬람 이념을 내세우는 일부 무슬림과 콥트기독교도 간 충돌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엔 한 무슬림이 콥트 교회에 방화한 것을 계기로 양측이 충돌해 수십 명이 숨지기도 했다.

 시리아 기독교도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자국 상황이 레바논처럼 되는 것이다. 중동 내에서 기독교인 비율(34%)이 가장 높은 레바논에선 1975년부터 15년간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내전으로 약 15만 명이 사망했다.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의 베샤라 부트로스 라이 총대주교는 “시리아 정부가 전복되면 내전으로 기독교인들이 위협받을 것”이라며 “알아사드에게 개혁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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