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 떼러 서초동까지 … ” 상도동 70대 주민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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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서초동에 광역등기국이 문을 열면서 폐쇄된 상도동의 동작등기소. [이한길 기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나이 칠십 먹은 할매한테 서초동까지 오라면 어쩌란 말이고.”

 27일 오전 서울 상도동의 동작등기소. 근처 상도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현복례(72·여)씨는 굳게 닫힌 등기소 철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현씨는 전셋집을 계약하기 전 등기부등본을 떼기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등기소는 전날인 26일부터 문을 닫았다. 현씨는 결국 걸어서 5분 거리의 등기소를 두고 왕복 1만6000원의 택시비를 들여 서초동 광역등기국에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았다.

 동작등기소가 문을 닫은 건 법원의 광역화 정책 때문이다. 서울 중심부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6일부터 기존의 강남·동작·관악·성북등기소와 상업등기소를 없앴다. 대신 서초동에 새로 생긴 광역등기국으로 업무를 일원화했다. 이유는 등기부등본 열람·발급이 이미 90% 이상 인터넷을 통해 이뤄져 청사 유지 비용 등을 줄이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등기소를 찾은 일반 시민들은 홍보 부족으로 광역등기국 설립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지역 등기소를 찾았다 헛걸음하기 일쑤였다. 26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강남등기소에는 10여 분 사이에 20여 명의 시민이 등기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서울중앙지법 관내 등기과·소가 2011년 9월 26일 등기국 신청사로 통합이전합니다’는 현수막과 신청사 위치를 알리는 팻말이 홍보의 전부였다.

확정일자를 받기 위해 등기소를 찾은 회사원 김은현(31·여)씨는 “정책을 바꾼다 해도 최소한 유예기간을 두거나 제대로 홍보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법원에 전화해 “동네 수퍼도 아니고 이렇게 급작스레 문을 닫아버리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등기소 광역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다. 지난달 법원 노조가 서울 지역 등기소를 찾은 민원인 48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384명(79.2%)이 ‘접근성 문제 때문에 광역등기국 설립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85명(17.5%)이었다.

2005년 설립된 광주등기국은 민원인들의 이동시간과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서울에서는 등기소를 통합해도 접근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앞으로 무인발급기 확대 등을 통해 빈틈을 메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5년까지 전국에 20곳의 광역등기국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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