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없는 정권’ 강조했는데 … MB, 무거운 귀국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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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만난 MB 미국 순방 마지막 날인 23일(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시애틀 숙소호텔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명예회장과 만났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월)다보스포럼에서 우리가 만나 약속했던 대로 (지난달)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했고, 게이츠 회장은 “환상적(It’s fantastic)”이란 반응을 보였다. [시애틀=안성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3박5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여느 순방 때와 달리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이 대통령은 순방 기간 동안 ‘주목’받는 정상 중 한 명이었다. 20∼22일 뉴욕 체류 중엔 유엔총회와 ‘유엔 원자력 안전 고위급 회의’에서 각각 기조연설을 했고, 한 인권단체(‘양심의 호소재단’)가 주는 ‘세계 지도자상’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1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한 행사에서 이 대통령과 교육을 주제로 대화한 사실을 소개해 현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한식 세계화 행사를 한 사실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렸다.

 하지만 순방에 동행한 참모들은 “이 대통령이 내내 무거운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김효재 정무수석으로부터 국내 상황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아 왔고, 언론 보도도 챙기고 있다고 한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사전영장이 청구됐고, 순방 기간 중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스폰서 의혹이 새로 제기되면서 ‘MB맨’들이 줄줄이 거명되는 상황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국내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인사들은 “대통령의 침묵은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그간 “스캔들 같은 게 이 정권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스캔들이 없으면) 그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2월25일)고 강조해 왔다. 그런 이 대통령이기에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이와 관련, “근래 비리 의혹은 우리도 실체를 모른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위기”라며 “뾰족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수행 중인 참모들이 스스럼없이 “아주 힘든 상황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말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한나라당도 고심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신 전 차관의 스폰서 의혹을 제기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폭로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선 “아들들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DJ(김대중) 집권 4년 차가 떠오른다”는 비유까지 나온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이 회장이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신 전 차관과 함께 이 대통령 대선 캠프인 안국포럼에서 활동했던 조해진 의원은 “이 회장이 신 전 차관 말고도 안국포럼 사람들에게 조직적으로 접근하려 했다면 나도 알았을 텐데 나는 이 회장과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자꾸 일방적 주장을 내놓을 게 아니라 객관적 증거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총공세를 펼쳤다. 손학규 대표는 “청와대와 정권 핵심발 ‘부패 쓰나미’가 국민의 아픈 마음을 강타하고 있다”면서 “검찰은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특별위원회’도 구성키로 했다. 위원장은 대검 수사기획관 출신의 박주선 최고위원이 맡기로 했다.

시애틀=고정애 기자, 남궁욱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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