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 신화’ 휘트먼 위기의 HP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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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멕 휘트먼(55·사진)이 휼렛패커드(HP)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HP는 22일(현지시간) 전임 CEO인 레오 아포테커를 경질하고 이베이(eBay) 대표를 지낸 휘트먼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HP는 최근 위기를 맞았다. 스마트폰·태블릿PC의 등장으로 개인·기업 고객의 PC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모바일 기기 생산을 중단하고 PC 사업을 분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HP 이사회는 “HP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아포테커를 경질하고 휘트먼을 새 CEO로 선임했다”며 “HP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다. 성공적으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경영진을 교체했다”고 밝혔다.

 휘트먼은 1999~2005년 HP CEO를 역임한 칼리 피오리나와 함께 대표적인 미국의 여성 경영자로 꼽힌다. 휘트먼은 1998~2008년 이베이 대표로 일했다. 재임기간 동안 이베이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키웠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가진 CEO로 알려졌다. 2004년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꼽은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자 1위’로 꼽혔다.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14억 달러가 넘는 개인 재산 중 10분의 1인 1억4300만 달러(약 1580억원)를 선거비용으로 썼지만 제리 브라운 현 주지사에게 패했다. 선거 과정에서 전 가정부로부터 부당해고·임금체불을 이유로 소송을 당해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후 HP에서 올 1월부터 이사로 활동했다. 휘트먼은 취임 직후 “HP를 이끌게 돼 영광스럽다”며 “HP는 실리콘밸리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중요한 기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HP가 전임 CEO인 아포테커를 취임 11개월 만에 전격 경질한 것은 실적 악화 때문이다. 아포테커는 재임 중 향후 실적 전망을 세 차례나 하향 조정했다. 올 들어 주가가 40% 떨어지면서 최근 교체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시넷은 “HP가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아포테커를 경질한 것은 HP가 겪고 있는 정체성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포테커는 경질 전날인 21일 현지 언론에서 교체 가능성을 제기할 때까지 경질 가능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날 이사회에도 향후 HP 경영 전략을 준비한 뒤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HP의 이번 인사가 최근까지 아포테커가 추진해 온 서비스·소프트웨어(SW) 기업으로의 변신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본다. 지난달 발표한 PC 사업부문 분사도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휘트먼은 “(내가 취임한 게) 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도록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애널리스트들은 휘트먼이 주로 소비재판매(B2C) 경험이 많고, 법인영업(B2B) 부문에서 일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휘트먼은 “HP만큼은 아니지만 큰 회사를 이끈 경험을 갖고 있다”며 “법인영업 경험은 부족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큰손’으로서 SW를 많이 구매해 봤다”고 설명했다.

김기환 기자

◆멕 휘트먼(Meg Whitman·55)=이베이(eBay) 대표를 역임한 여성 경영자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1977년). P&G ·월트디즈니·이베이 같은 회사를 거쳤다. 지난해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4년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꼽은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자 1위’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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