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인사이드] “염명천, 순환정전 때 잡지사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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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23일 한전 본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이날 그는 정전사태가 벌어진 15일 당시 행적을 추궁받았다.

불 꺼진 그날, ‘수뇌’들의 역할은 사실상 전무했다. 정전사태가 벌어진 15일 오전부터 전력 수급 상황이 심상치 않았지만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순환정전이 시행될 때도 잡지사 인터뷰까지 소화하는 여유를 보였다. 지휘감독하는 주무부처 지식경제부와의 연락체계도 엉망이었다. ‘경보 발령’을 알리는 팩스는 지경부의 주무과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갔다. 위기 조짐이 보일 때 구성되는 수급관리대책기구의 수장인 한전 사장대행 역시 정전 직전까지 심각한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안일함과 오판, 정보 공유 부재가 연속되면서 주무부처의 장인 최중경 지경부 장관도 정전조치가 실시된 지 50분여 뒤에야 이를 보고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전력 수급 관리의 난맥상은 23일 열린 한국전력·전력거래소·발전사 등에 대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날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박민식(한나라당) 의원의 당일 행적과 관련된 추궁에 “지경부 출신 선배들과 개인적인 점심 약속이 있어 오전 11시30분에 사무실을 떠나 오후 1시45분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첫 보고를 받은 건 오후 1시53분이며,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안 건 (정전이 결정되기 직전인) 오후 2시55분이었다”고 답변했다. 그는 순환정전 조치가 실시된 즈음에는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또 전력거래소는 오후 1시35분 ‘관심 단계’ 진입을 알리는 팩스를 지경부로 보냈지만 당일 송수신 기록에 찍힌 수신처는 주무과인 전력산업과가 아닌 무역진흥과였다. 엉뚱한 곳으로 간 긴급 팩스는 결국 지경부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해 실시한 자율절전·직접부하제어 등의 효과도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은 수급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기업 등에 미리 약속한 만큼 절전을 하도록 통보하거나 심각한 상황에선 직접 전기를 끊는다. 대신 지원금을 준다. 하지만 이날 김재균(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율절전을 약정한 814곳 중 당일 이를 제대로 이행한 곳은 86곳(10.5%)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이행하지 않은 곳 중에는 수자원공사·마사회·국민체육진흥공단·지역난방공사·인천국제공항 등 공공기관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후 실시된 직접부하에서도 약정한 대기업과 한전 자회사 등을 포함해 10곳 중 7곳에서 절전 실적이 없거나 극히 미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 김중겸 사장은 “너무 긴급히 통보돼 실적이 부진했던 면이 있지만 앞으로 불이행 시 벌칙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력거래소의 전력 수급 관리·운영 기능을 한국전력공사에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지경부 정재훈 에너지자원실장은 이날 “두 기관 간 유기적 협조체제를 만들기 위해 인력 파견, 조직 통합 등을 포함한 모든 사항을 검토 대상에 놓겠다”고 말했다. 또 한전은 전력이 부족할 때는 사용자별로 미리 정한 절감 목표에 따라 전력 사용을 줄이도록 규제하는 내용의 ‘긴급 전기 사용 규제법안’ 도입을 정부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절감 목표를 15%로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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