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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전사태는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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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양훈
인천대 교수·경제학

예고 없이 일어난 9·15 정전사태로 국민들이 많이 놀랐다. 불편과 재산상 손실도 대단했다. 국가전력관리시스템이 엉망이었다는 게 점차 드러나고 있다. 위기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초기 대응도 극히 미비했으며, 허위 보고까지 있었다. 급기야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걸로 종결지어선 안 된다. 문책 등을 통해 문제를 피상적으로 해결할 일이 결코 아니란 말이다. 이번은 일과적인 사태가 아니라 참으로 심각한 국가적 위기였다. 아차 했으면 전국이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됐다. 블랙아웃이 되면 국가기능이 며칠간 전면적으로 마비된다. 통신은 물론 지하철과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고, 금융과 정부 기능이 올스톱된다. 재난 서비스도 정지되어 인명피해가 뒤따른다.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본질인지부터 명확해져야 한다.

 여름 피크가 지나면 다가오는 겨울 피크를 대비해 전국의 모든 발전기를 돌아가면서 정비 점검한다. 그래야 다음 피크 때 잘 돌아가고 설비도 더 오래 쓸 수 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서둘러 정비계획을 시작하게 된다. 수백 개의 발전기를 기간 내에 모두 정비하려면 서둘러서 하게 마련이다. 요즘처럼 전기 공급능력이 부족해 예비율이 낮은 시기에는 빡빡하게 진행해야 한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살피며 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 이번 같은 사태도 일어나는 것이다.

 예비율이 부족한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공급능력이 모자라거나 수요가 너무 높아서다. 공급능력부터 먼저 보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는 오래 전부터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약 10년 전부터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비교적 빨리 건설할 수 있다는 가스발전소도 2~3년 전부터 건설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장기계획을 해야 공급능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전기공급이 필요하다고 당장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10년 전부터 공급능력을 늘리는 데 소홀했는가를 점검해봐야 한다. 당시 여건으로 볼 때 결코 발전소를 적게 지은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매번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발전소를 과도하게 많이 짓는다고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어서다. 물론 발전소를 무턱대고 지을 수는 없다. 미래를 재보지 않고 마구 짓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발전소를 자기 지역에 건설하지 않겠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그러했다. 그래서 공급능력은 결코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

 일단 공급능력이 결정되면 수요를 이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수요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데에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물가를 먼저 걱정한 게 그것이다. 공공요금을 묶어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인 힘이 늘 시장원리보다 앞서 있었고 압도적이었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자연히 전기소비는 급등했다. 심야전기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름보일러를 쓰던 식당은 등유가격이 오르니까 전기난방으로 바꾸었다. 여름에는 냉방에, 겨울에는 난방으로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마구 쓰는 일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너지를 쉽게 마구 쓰던 시절은 지나갔다. 무턱대고 공급을 늘려 해결하는 것은 더 이상 좋은 해법이 아니다. 그런 시대가 벌써 지나갔다. 한전은 독점 공기업이니까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고, 그래서 전기요금을 싸게 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바보들에게 이런 일을 맡겨 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대로 두면 전기부족과 정전사태는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아껴 쓰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어설픈 물가논리보다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