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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팀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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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5년 뉴질랜드에서 ‘빨간 양말 파동’이 벌어졌다. 빨간 양말을 신은 피터 블레이크라는 요트 스키퍼(선장)의 인기 때문이었다. 그는 뉴질랜드 요트팀을 이끌고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컵대회 144년 역사상 미국은 단 한 차례를 빼곤 진 적이 없던 무적함대였다. 뉴질랜드 국민에겐 월드컵 축구 우승보다 더 큰 ‘사건’이었다.

 요트 경기는 기술력과 돈이 어우러진 ‘귀족 국가’의 스포츠다. 최고 권위의 아메리카스컵은 1851년 첫 대회 이후 미국의 독무대였다. 1980년대 들어 호주·스위스·뉴질랜드가 한두 차례 우승해 본 게 고작이었다. 출전해 본 나라도 우승 4개국 외에 영국·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웨덴· 일본·중국·남아공이 전부였다.

 대회는 요트클럽 대항전이다. 다만 배는 자국 기술로 건조한다는 조건이 있어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띤다. 요트 경기는 바람의 힘으로 돛단배를 몰아 빠르기를 겨룬다. 항해학·기하학·물리학 등 기초과학과 첨단 기술이 결합돼야 한다. 인간의 투지와 지혜는 필수다. 아메리카스컵에서 네 차례 우승한 러셀 쿠츠는 “보트가 바람 속으로 들어가면 수학·삼각법·물리 지식을 총동원한다”고 말했다. 아메리카스컵은 최고의 요트와 세일링의 향연장이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여름올림픽과 월드컵의 뒤를 잇는다.

 한국 스포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일이 요트에서 진행 중이다. 아메리카스컵 사전대회(pregame)인 월드시리즈에서 한국의 ‘팀 코리아(TEAM KOREA)’가 처음 출전해 선전했다. 영국 플리머스 경기에서 참가 9개 팀 중 종합 3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어제 전해졌다. 팀 코리아의 질주 장면은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최대 30노트(시속 55.56㎞)로 달리는 전장 14m의 캐터머랜(catamaran·몸체 2개를 가진 쌍동선)에는 ‘TEAM KOREA’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팀 코리아는 20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제34회 아메리카스컵 결승전까지 전 세계 10여 개 도시를 돌며 월드시리즈에 참가한다. 여기엔 30대 한국 요트인 2명의 노력이 숨어 있다. 국내 선수 부족으로 외국인 5명으로 팀을 구성했고, 롤렉스·오라클 로고를 돛에 단 외국 팀과 달리 후원사조차 없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메리카스컵을 한국에 가져오겠다는 그들의 도전과 열정이 아름답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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