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약 공급 중단…로슈 “약값 못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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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스위스 거대 제약회사 로슈가 그리스 국공립 병원에 약품 공급을 끊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그 병원들은 그리스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 궁지에 몰려 재정지원을 줄이는 바람에 약값을 제때 내지 못해서”라고 18일(한국시간) 보도했다.

 로슈가 공급을 끊은 약품 리스트엔 항암제 젤로다와 조류인플루엔자 약인 타미플루 등이 포함돼 있다. 로슈의 최고경영자(CEO)인 세버린 슈반은 “국공립 병원을 제외한 민간 병원이나 약국엔 약품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며 “환자들은 처방을 받아 민간 약국에 가면 우리 약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국공립 병원 가운데 최근 3~4년간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 병원도 있으며 더 이상 병원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온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WSJ에 따르면 올 6월30일 현재 그리스 국공립 병원들은 약품 19억 유로(약 2조9500억원)어치를 납품받았다. 그 가운데 37% 정도만 약값을 지급했다. 나머지 11억9700만 유로(약 1조8600억원)는 체납됐다.

 이런 “체납 사태는 민간 병원과 약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은 보도했다. 그리스 민간 병원과 약국은 자체 자금으로 제약회사에 약값을 치른 뒤 의료보험공단에서 그 돈을 지급받는다. 하지만 2009년 11월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고강도 긴축 처방 때문에 의료보험 재정이 악화돼 약값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민간 병원과 약국은 자체 자금이 고갈되는 바람에 약값을 제약회사에 주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에 약품 공급을 중단한 제약회사는 로슈가 처음이 아니다. 당뇨병 치료제가 유명한 덴마크의 노보노르디스크는 지난해 그리스에 인슐린 약품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노보노르디스크는 현재 값이 상대적으로 헐한 복제(제너릭) 인슐린은 계속 대주고 있지만 값이 나가는 약품은 공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 국공립 병원들만 약값을 밀린 게 아니다.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일부 국공립 병원도 제때 약값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재정위기가 확산되면 ‘의약품 부족사태’도 전염될 듯하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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