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방 지도자들이 리비아서 개선장군 행세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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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07면

영국·프랑스 정상의 리비아 방문 같은 ‘서방의 움직임’에 대한 중동의 입장을 듣기 위해 알아흐람 정치전략연구센터 무함마드 가말 술탄(59·사진) 소장과 17일 새벽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센터는 중동지역 정치전략을 연구하는 최고 권위의 기관이다. 술탄 소장은 두 정상의 방문을 “전후 재건시장 선점 및 유전 확보를 위한 물밑 작업을 펼친 것”이라고 평했다.

카이로 알아흐람 정치전략연구센터 술탄 소장 인터뷰

-양국 정상의 요란스러운 리비아 방문을 아랍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방송에는 두 정상의 연설에 많은 리비아인이 환호하는 모습이 잡혔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리비아인이 이들의 방문을 환영할까. 극소수 혁명에 들뜬 일부 계층일 뿐이다. ‘이번 혁명은 리비아인들의 혁명’이라고 강조한 캐머런 총리의 연설에 대해 많은 아랍인은 ‘그런데 왜 당신이 개선장군처럼 거기에 있소’라고 반박하고 있다.”

-두 정상이 지금 리비아를 방문한 이유는.
“시점이 상당히 교묘했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아직 체포되거나 사살되지 않았고,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대한 반군의 최종 진격을 앞둔 상황이었다. 양국 정상의 방문은 반군의 최종 승리를 앞두고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군사작전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 영국과 프랑스에 ‘보상적 조치’를 하라고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동맹국들은 리비아가 앞으로 맺을 계약에서 우선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리비아 상황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특히 영국·프랑스·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
“군사작전에서 미국은 뒤에서 지원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전면에 나섰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겉으로는 유럽의 전투기들이 리비아 공습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항공모함과 정찰·정보력이 없었더라면 유럽의 군사작전은 불가능했다. 리비아의 경질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리비아와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에 골치를 앓고 있던 유럽 국가들이 앞에 선 것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 다른 전선을 펼칠 수 없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간접적인 혹은 드러나지 않은 역할’에 충실했다.”

-리비아를 포함해 ‘아랍의 봄’에서 서방국가들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전의 분쟁지역 문제 해결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아랍권에서는 또다시 서방의 이중잣대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에 서방은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혁명은 빠르게 진행돼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반면 산유국인 리비아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신속한 군사적 개입이 이뤄졌다. 2005년 유엔 총회가 결의한 ‘국민보호책임’(대량 인명피해나 인권유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주권국가의 국내 문제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용된 첫 사례다. 주권과 인권을 놓고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는 사안임에도 리비아에는 신속하게 적용됐다. 그러나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선 미온적이다. 특별한 기준도, 도덕성도 없고 이익·이해만 추구하는 서방의 개입을 아랍권은 여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리비아는 언제쯤 안정을 찾을까.
“리비아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카다피 정권이 붕괴했지만 정치 안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집트·튀니지의 정권교체는 시민혁명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리비아는 내전이라는 점에서 패자가 있고, 때문에 저항도 이어질 것이다. 또 140여 부족 간 화합도 이뤄야 하고, 최근 정치참여를 선언한 이슬람 세력 견제도 쉽지 않은 문제다.”

-새로운 리비아 건설에서 서방국가들의 바람직한 역할은.
“중동 내 새로운 자유민주국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야 한다. 리비아의 유전과 재건사업을 놓고 욕심을 부린다면, 이러한 서방의 경쟁이 리비아의 안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와 영국은 NTC를 가장 먼저 리비아의 대표기구로 인정하는 한편 여러 국제회의를 주도하면서 리비아 석유와 재건시장 선점에 노력해 왔다. 미국도 간접적이지만 총리인 마흐무드 지브릴, 재정 및 석유 장관인 알리 타르후니 등 친미 인사를 NTC에 진입시키는 데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리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리비아와 유사한 수준의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 리비아가 그랬듯 시리아·예멘 등의 장기독재 집권세력도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방의 정권퇴진 압박과 추후 군사적 개입도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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