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공동 재무부 만들고‘질서 있는 디폴트’로 위기의 악순환 끊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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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0면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81·사진)는 “이대로는 그리스의 무질서한 디폴트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15일 로이터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유로존이 공동 재무부를 설립하고 질서 있는 디폴트 방안을 논의해야 전 세계가 제2의 대공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칼럼을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의 유럽 위기 진단

-유럽 위기의 원인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세계 금융 시스템 붕괴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에는 유럽 재무장관들이 금융회사의 신용회복을 위해 단 하나의 금융회사도 파산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이를 따랐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나 유로존이 아니라 회원국이 독립적으로 이런 조치를 실행하게 한 데서 위기의 씨앗이 심어졌다. 2008년에는 미국 금융 당국이 제 역할을 했지만 국채 위기를 맞이한 유럽에는 공동 재무부조차 없다. 결국 1년 이상 잠복했던 문제가 지난해에 폭발한 것이다.”

-왜 해결이 어렵나.
“유로존에서는 위기에 대처하려면 개별 국가들이 정치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국 정부는 시간을 벌기 위한 단기 대책에만 의존하고 있다. 일반적인 위기 때는 이런 대응도 나쁘지 않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공포는 가라앉고, 신뢰는 회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최소한의 조치만 할 뿐이라는 점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위기가 다른 위기로 이어지고, 유럽은 끝나지 않는 ‘위기의 악순환’에 빠졌다. 각국 정부가 정치적인 고려를 거쳐 뒤늦게 대응책을 내 봐야 결과는 늘 불충분하다. 이 부분이 유럽 위기를 이해하는 키포인트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지난해 5월 27개 EU 국가가 유럽재정안정기구(EFSF)를 만들었다. 현재 4400억 유로 규모다. 유로존 전체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경제 규모가 작은 3개국(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이 경제 규모가 큰 국가를 뒷받침할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 결정적인 문제는 각국 정부에서 모은 돈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돈을 쓸 수 있는 권한은 회원국 정부에 있다. 그래서 EFSF는 위기에 재빨리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회원국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왜 문제가 이어지나.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데 현재 EFSF 체제로는 저금리 자금 지원이 불가능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임시방편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보듯 이런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독일은 금융 시스템 안정에 주력해야 하는 중앙은행이 재정 적자국 지원에 나서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국채 매입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ECB의 독일 대표인 악셀 베버가 지난달 사임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주르겐 스타르크도 사표를 던졌다. 결국 ECB는 사들인 국채를 EFSF에 떠넘겼다. 하지만 EFSF 자금은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를 돕는 데 거의 소모됐기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안은 없나.
“지금이라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을 깨닫는다면 완전히 다른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우선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의 ‘질서 있는 디폴트(ordered default)’와 유로존 탈퇴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세 나라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로 탈퇴 후 환율을 조정해 국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하면 유로존에 머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EFSF는 예금을 보호할 것이고 IMF는 이들 국가의 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돈이 많이 들지만 유로존의 적자 국가들은 금융경색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고, 결국 정부가 긴축에 들어가게 되는 악순환에서 탈출할 수 있다.”

-디폴트에도 금융 붕괴를 막을 수 있나.
“우선 네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은행 예금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스 은행에 예금한 돈이 사라진다면 이탈리아를 비롯해 재정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의 은행 예금자들은 앞다퉈 돈을 찾아 독일이나 네덜란드 은행으로 갈 것이다. 둘째, 디폴트 국가의 경제 전체가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몇몇 은행은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셋째, 유럽 은행들의 자본금을 확충하고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 전체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넷째, 다른 적자 국가들의 국채에까지 위험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마지막 두 가지 조치는 디폴트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실행해야 한다.”

-가장 큰 변수는.
“세금을 걷고 독자적으로 채권을 발행할 권한이 있는 공동 재무부를 설립해야 한다. 유로존 국가들은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독일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 국민은 아직도 유로를 지원하느냐, 버리느냐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실수다. 유로의 붕괴는 독일 당국이 감당할 수 없는 경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독일 국민이 이를 깨닫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수록 독일과 나머지 세계 각국이 치러야 할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유로 공동 재무부 설립에 대한 합의만 이뤄진다면 한시적으로 ECB의 상환능력에 지급보증을 하는 방법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것만이 금융 시스템 붕괴와 또 다른 대공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지 소로스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영국으로 이민 가 런던의 금융 중심지 씨티에서 첫 직장을 얻은 뒤 미국 월가로 옮겼다. 70년대부터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와 손잡고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그가 운영한 퀀텀펀드는 92년 영국 파운드화 공격을 통해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수십 년 동안 연평균 20%의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최근 수익률이 연 6%대로 떨어지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헤지펀드 규제를 강화하자 올 7월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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