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분 더 일하자” … 오른쪽으로 간 덴마크 좌파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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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2분씩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해 매주 한 시간의 추가 근로 효과를 내자고 주장한 좌파 정치인이 북유럽 국가 덴마크의 첫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됐다.

 15일 치러진 덴마크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의 헬레 토르닝-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45·사진)가 이끈 좌파 진영이 승리했다. 총선에서 토르닝-슈미트를 중심으로 한 좌파 연합세력 ‘레드 블록’은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Lars Løkke Rasmussen·47) 현 총리(자유당 당수)의 우파 집권세력 ‘블루 블록’에 신승을 거뒀다. 179석의 의석 중 92석을 좌파가, 87석을 우파가 각각 차지했다. 이로써 10년 만에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토르닝-슈미트는 ‘매일 12분 더 일하기’ 운동을 제안했다. 모든 근로자가 조금씩 일을 더해 경제성장에 기여하자는 것이었다.

 평소 근로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이자고 주장해온 유럽 좌파로서는 신선한 제안이었다. 덴마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1.25%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히 경제 문제 해결 방안이 최대의 선거 이슈가 됐다.

라스무센의 우파는 긴축을 주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의 4.6%까지 치솟은 재정적자율을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복지예산을 감축하고 퇴직연금 수령 시작을 67세로 2년 늦추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토르닝-슈미트의 좌파는 공공 지출을 늘려 경기 부양을 시도하겠다고 외쳤다. 교육과 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집중 지원을 약속했다. 추가로 필요한 예산은 은행과 부유층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마련하겠다고 했다. 일반적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AFP 통신 등 외신들은 정부의 긴축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과 7월 이웃 나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극우파 테러가 좌파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대학 교수의 딸로 자라난 토르닝-슈미트는 20대 후반부터 사회민주당 당직자로 활동했다. 1999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됐고, 2005년 국회의원이 됐다. 2007년 총선에서 좌파 연합을 주도하며 정권 교체를 시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의 남편은 전 영국 노동당수 닐 키녹의 아들 스티븐이다. 시아버지 키녹은 92년 영국 총선에서 존 메이저 보수당수에게 막판 역전패를 당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토르닝-슈미트의 승리로 “키녹가의 저주가 풀렸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서는 독일·핀란드·아일랜드·아이슬란드 등에서 여성이 국가를 이끌고 있다. 호주·브라질·인도·아르헨티나·태국·방글라데시의 정상도 여성이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12분 더 일하기’=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 내정자가 주장한 경제 살리기 운동. 하루에 12분씩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해 일주일당 한 시간의 추가 근로 효과를 내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덴마크 노동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2009년 기준)은 1559시간(한국은 2232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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