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한 경우 전력 중단 가능” 한전 피해보상 면책 규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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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정전 사태는 기간 산업에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정전 쓰나미’를 겪어야 했다. 자체 발전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전력의 정전 조치가 예고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전의 약관상 정전 피해 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피해 기업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아야 할 처지다. 한전의 전기공급약관(49조)에는 전기의 수급 조절로 부득이하게 전기공급을 중지하거나 제한한 경우엔 손해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돼 있다.

 오후 4시를 전후해 전국 각지의 산업단지에는 느닷없는 정전 사태가 덮쳤다. 경북 포항 철강공단에선 300여 개 업체 중 60여 개 업체가 1시간 정도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다. 360개 업체가 입주한 대덕산업단지와 197개 업체가 있는 대전산업단지 일부도 정전으로 인해 공장들이 멈춰 섰다.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국민임대단지의 21개사도 정전을 겪었다. 강릉과학산업단지의 22개 업체도 정전됐다. 군산국가산업단지 내 H사는 오후 4시쯤 조선용 철판을 자르다가 기계가 멈춰서는 바람에 철판을 못쓰게 됐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R사는 정전으로 조업이 불가능해져 직원들을 귀가시켰다.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의 한 플라스틱 성형업체는 정전으로 원료가 굳어 생산라인에 있던 원료를 폐기해야 했다. 전북 익산의 한 대형 육계공장은 정전으로 공장 라인이 멈춰서 가공 중이던 닭들을 쓰지 못하게 됐다.

 유통업계에선 편의점들의 피해가 컸다. 정전으로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의 작동이 멈췄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는 신용카드 결제를 하지 못했고, 매장 직원들이 판매 내역을 일일이 메모지에 기록했다. 빙과류가 녹는 것을 막기 위해 냉동고를 테이프로 돌려 막기도 했다.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지 않은 소규모 업체들도 갑작스러운 정전에 속수무책이었다.

 반면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제철 등 기간 산업의 주요 공장들은 정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국 주요 공장은 이번 정전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반도체 측도 “반도체 시설은 일단 전력 공급이 끊기면 큰 피해가 발생하는데, 한전이 공장 등을 주요 시설로 분류해 전력을 정상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남 울산, 전남 여수, 충남 대산, 충북 오창 등 지방 산업단지에 대규모 공장을 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와 LG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화학업계는 정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한전으로부터 사전에 통지를 받고 자가발전 비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포스코 측은 “전기 공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첨단 빌딩인 삼성그룹 서초 사옥의 경우 1초 정도 전기가 나갔으나 곧바로 보조전력 가동으로 전기공급이 재개됐다.

 한편 일부 시민은 한국전력을 상대로 집단적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SNS 사이트에는 냉장·냉동고에 전원이 끊겨 생업에 피해를 본 정육점·횟집 주인이나 컴퓨터 데이터를 잃어버린 누리꾼들이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산업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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