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프랑스 은행 … 유럽판 금융위기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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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나 볼 인사를 나누고있다. 미국 신용평가업체인 무디스는 이날 프랑스 대형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낮춰 유럽 금융시장을 또다시 긴장시켰다. [파리 로이터=뉴시스]


3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추석 연휴를 막 끝낸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것 말이다. 올해도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큼지막한 악재가 터졌다. 프랑스 대형 은행들의 신용등급 강등이다. 국내 금융시장엔 주가와 원화가치가 급락하며 충격파가 번져 나갔다. 14일 오후 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프랑스 2위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의 신용등급을 Aa2(AA)에서 Aa3(AA-)로 낮췄다. 3위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의 신용등급은 Aa1(AA+)에서 Aa2(AA)로 강등했다. 모두 한 단계씩 등급이 떨어졌다. 무디스는 “두 은행이 그리스에 빌려준 돈이 전체 대출금 가운데 적지 않은 수준”이라며 “최악의 경우 두 은행이 영향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하면 두 은행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화들짝 놀란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에서 달아났다. 코스피는 3.5% 넘게 추락했다. 일본 주가는 1% 남짓 떨어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30.5원 급락한 1107.8원으로 마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무디스의 프랑스 은행들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이 불안심리를 증폭시켰다”며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걸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엔화의 가치는 급등했다. 엔-달러 환율은 역사상 최저 수준인 76엔 선을 맴돌았다. 위기 때 빛을 보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시한폭탄이다. 8월 말 현재 3330억 유로(약 516조1500억원)의 빚을 짊어지고 있다. 올해 긴축 약속을 지키지 못해 9월분 구제금융 80억 유로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선언하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유럽, 특히 최대 채권국인 프랑스의 시중은행들을 덮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유럽 재정위기의 금융위기화다. 그러면 리먼 사태 때처럼 글로벌 자금줄이 마르면서 빚 1조9000억 유로(약 2900조원)를 짊어진 이탈리아마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다급해진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는 13일 “갑작스러운 그리스 파산은 재앙”이라며 최악의 사태를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이날 그리스 국채값은 폭락해 1년 만기 수익률이 100%를 넘었고 2년 만기 수익률은 70%를 돌파했다. 하루 뒤인 14일 서울 등 동아시아 주가가 미끄러졌다. 시장이 그의 말을 반신반의해서다.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이다. 메르켈이 이끄는 집권 연립정부 내에선 요즘 유럽 구제작전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또 그리스 경제는 긴축을 견딜 체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극심한 침체, 실직자 급증, 사회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구제금융 대가로 약속한 긴축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처지다.

강남규·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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