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5년 순환출자 고리 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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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한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도 끊어지고 수직구조로 바뀌게 된다.

 삼성카드는 14일 자료를 내고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25.64%) 중 20.64%를 매각하기 위해 조만간 매각 주관사를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달 26일 외국계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입찰제안요청서를 보냈다. 매각 방식에 대해서는 “블록딜(가격·물량을 미리 정해놓고 특정 주체에 일괄 매각)과 기업공개(IPO)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는 건 금융회사가 비금융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삼성카드는 내년 4월까지 보유 지분 비율을 5%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카드가 제3자 블록딜 방식으로 외국계 펀드 등에 지분을 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카드가 평가한 에버랜드 장부가액은 주당 214만원이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의 물고 물리는 순환출자형 지배구조로 돼 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1996년 완성된 이 구조가 15년 만에 깨지게 됐다. 대신 ‘에버랜드→생명→전자→카드’로 이어지는 수직구조로 바뀐다. 구조가 바뀌더라도 이건희 회장 일가의 에버랜드 지분 합계가 45.6%에 달해 에버랜드와 핵심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 행사엔 지장이 없다.

 이번 매각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첫걸음이 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자의든 타의든 첫발은 떼었고, 앞으로 5~6년 동안 단계적으로 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매각은 금산법에 따른 조치이고, 지주사 전환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작업”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애란 기자

◆순환출자=A→B→C→A사 순으로 하는 출자를 뜻한다. 예컨대 같은 그룹 안에서 자본금 100억원을 가진 A사가 B사에 50억원을 출자하고 B사는 C사에 30억원을 출자하며 다시 C사는 A사에 10억원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본금과 계열사 숫자를 늘려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A사는 자본금 100억원으로 B사와 C사를 지배할 수 있다. A사의 자본금도 C사가 출자한 10억원을 포함해 110억원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10억원은 그룹 밖에서 들어온 돈이 아니어서 그룹 전체로 따지면 자본이 확충된 것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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