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혐의 유명 블로거 사이트,사이버 부관참시 등 각종 문제야기…폐쇄 안되는 이유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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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유명 블로거의 실체는 스릴러 영화의 섬뜩한 반전을 방불케 했다.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공개 수배 중이던 블로거 황덕하(52)씨가 13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의 한 기도원 근처에서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5일 황씨의 공개 수배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를 따르던 네티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지식인처럼 포장됐던 황씨의 '허세'에 숱한 네티즌들이 낚였다.

이제 문제는 그가 남긴 블로그다. 황씨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운영하던 블로그는 방치된 채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블로그에는 온갖 욕설과 저주를 담은 네티즌 글이 잇따르고 있다. 방문자가 늘어나면서 특정 사이트나 카페를 광고하는 스팸 글도 등장했다. 온갖 욕설과 광고, 호기심에 찾아온 네티즌 글 등이 뒤섞여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블로그에 사이버 상의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일어나고 있다.

◇욕설로 도배된 블로그=황씨는 생전 자신의 블로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정치와 경제는 물론 일상생활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 1만7800여 개의 글을 올렸다. 범행 당일로 알려진 7월 7일에도 오전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덮친 모래 폭풍 영상을 곁들인 글을 올렸다.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듯 올렸던 그의 글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스크랩한 것이었다. 법률 상식을 자랑하며 '서초동 인권변호사'란 별명도 얻고, 정부 정책을 비난하며 진보 정치인을 추종하는 등 일부 네티즌에겐 진보계 명사로 통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황씨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간의 이미지와 판이하게 달랐다. 황씨는 전문대를 졸업한 후 부동산 사업을 하다 2003년부터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며 최근까지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가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공개 수배 중이라는 소식이 인터넷에 전해지자 황씨의 블로그에 네티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더러운 살인자" "뻔뻔하다" "어떻게 아내를 죽일 수 있는가"라는 비난과 욕설을 담은 글이 잇따랐다. 13일 황씨가 목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방문객이 러시를 이뤘다. 일부 네티즌들은 "황씨의 블로그를 '성지순례(화제가 되는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뜻의 인터넷 은어)'해 욕설을 남기자"며 선동하고 있다.

황씨가 운영했던 블로그 메인 화면

그의 블로그는 욕설로 도배된 글과 '유명 블로거'라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글, 스팸 광고까지 온갖 글이 뒤덮여 통제 불능 사이트가 됐다. 황씨의 범행 혐의가 밝혀져 공개 수배가 되고, 사체로 발견된 뒤에도 아직 그는 블로그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사이버 부관참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오후 6시 현재까지 그의 블로그에는 총 200여 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했다. 14일 하루에만 1만여 명이 넘는 이들이 그의 블로그를 다녀갔다. 이제는 황씨의 존재를 몰랐던 네티즌들도 유명 블로거였다는 그가 평소 어떤 글을 올렸는지 궁금해하며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고 있다.

황씨의 블로그를 게재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측은 유가족의 별도 요청이 있지 않으면 황씨의 블로그를 임의로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 관계자는 "사망한 사람의 계정은 유가족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삭제하는 다음의 '디지털유산' 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황씨의 블로그를 임의로 폐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또 "모니터링 원칙에 따라 성인물이나 저작권 위배 게시물 등 유해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지만 황씨 블로그의 개별 게시물에 대해서는 이같은 모니터링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황씨의 글은 사이버 상에서 계속 생존하게 되는 셈이다. 더불어 '사이버 부관참시'라는 끔찍한 인터넷 현상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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