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선수가 한다’ 믿음의 야구 … 하반기 승률 7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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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양승호 감독이 지난달 3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 전에 더그아웃에서 기자들과 얘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부산=이영목 기자


양승호(51)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올 시즌은 파란만장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21일 롯데의 제14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많은 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년 하위 롯데는 2008~2010년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구단은 “목표는 우승”이라며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양 감독은 OB와 두산에서 11시즌을 코치로 보냈지만 감독으론 2006년 LG 감독대행으로 80경기를 치른 게 전부였다. 선수로도 “프로 통산 4시즌에서 친 4홈런이 모두 기억난다”고 말할 정도로 무명이었다. 2007년부터는 고려대 감독으로 프로 무대를 떠나 있었다.

당시 롯데의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다. 3년 연속 4위 팀의 새 감독이라면 최소 기대치가 3위다. 부산은 어느 도시보다 열성 야구팬이 많다. 전임 감독은 화끈하고 색깔 있는 야구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과연 루키 감독이 중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의심의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4월 2일 사직 개막전. 롯데는 한화에 6-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시즌 네 번째 경기부터 3연패를 당했고, 4월 전적은 7승14패2무였다. 사직구장에선 대놓고 감독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양 감독은 “4월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무리 훈련부터 양 감독은 여러 구상을 했다. 먼저 불펜 투수진의 보직을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야수들의 포지션도 과감하게 바꿨다. 타격은 다소 떨어지지만 수비는 일품인 이승화를 주전 중견수로 낙점했다. 타선의 힘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주전 중견수 전준우를 3루수, 3루수가 본업인 황재균을 유격수로 보냈다. 그리고 지명타자 홍성흔에게 좌익수 글러브를 끼게 했다.

이 모든 구상은 4월 한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신임 감독이 처음부터 팀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여기에 믿었던 선수의 부진과 부상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롯데는 5월에 14승8패1무로 반등하는가 싶더니, 6월에 다시 8승14패로 무너졌다. 이때부터 양 감독은 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녔다. 6월 말이 되자 인터넷 팬 커뮤니티에서 ‘무관중 운동’ 여론이 일었다. 구단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롯데의 가장 큰 매출은 입장권 판매에서 나온다.

그러나 기적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7월 13승6패로 월 최고 승률(0.684)을 찍더니, 8월에는 16승7패(0.696)로 더 잘 나갔다. 9월 8일까지 후반기 승률은 0.719. 롯데는 올스타전 이후 최강의 팀으로 부상했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기정사실이다. 2위를 굳혀 플레이오프에 직행한다면 롯데는 99년(2위) 이후 12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최고 성적을 올리게 된다. 양 감독은 롯데의 선전에 대해 “나도 잘 모르겠다”고 웃었다. 선수 구성으로 볼 때 롯데는 20여 년 만에 가장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다. 10승 투수 네 명과 3할 타자 6명이 동시 배출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좋은 선수가 많다고 해서 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롯데는 강점만큼이나 약점도 뚜렷한 팀이었다. 불펜은 늘 골칫거리였고, 수비와 세밀한 플레이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공수를 겸비한 야수도 모자랐다. 양 감독의 시즌 초반 시행착오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었다.

패배가 이어지면 선수들이 코칭스태프에게 의문을 갖는 게 야구단 생리다. 롯데는 감독뿐 아니라 코치진도 대거 교체했다. 선수에게 ‘코칭스태프는 나를 잘 모른다’는 의문이 생기면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시즌 초반 롯데에는 이런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은 뒤 양 감독은 ‘믿음’을 택했다. 그는 늘 “야구는 선수가 한다”고 말한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선수에게 묻지 않고, 감독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선수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지도 유형으로 보면 김응용·김인식 감독과 비슷하다. 양 감독은 선수와 코치로 두 명장을 오랫동안 보좌한 인연이 있다. 두 감독은 한 번 선수에게 어떤 타순을 맡기면 좀체 바꾸지 않았다. 양 감독도 그렇다. 특히 고참선수의 타순을 변경할 때는 꼭 면담을 거친다. 8월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 크리스 부첵은 1회에만 5점을 내줬다. 하지만 양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지 않았고, 부첵은 1점만 더 내주고 6회까지 선발 책임을 다 했다.

이런 리더십이 롯데가 양 감독을 선택한 이유였다. 장병수 롯데 대표는 “로이스터 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는다면 후임은 양승호라고 결론을 내린 게 지난해 8월이었다. 사실상 단독 후보였다”고 말했다. 왜 양승호였을까. 장 대표는 “그전까지 감독 경력이 있는 이들을 몇 명 접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두 팀 이상을 맡았던 경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증된 후보’ 대신 루키 감독을 원했다는 얘기다. 장 사장은 “전임 로이스터의 리더십은 국내 어떤 감독과도 달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3년을 뛰었던 선수들이다. 전임-신임 감독 사이 연계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한 감독이 오면 팀의 화합이 깨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또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도 중시했다”고 말했다. 양 감독의 ‘약점’으로 여겨졌던 ‘일천한 감독 경력’이 오히려 가장 큰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선수단도 뭉쳤다. 주장 홍성흔은 여러 차례 “선수가 코칭스태프의 방향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 팀이 망가진다”고 강조했다. 이대호는 시즌 내내 발목 통증과 싸우면서도 전 경기에 출전했다. 송승준과 장원준은 선발 로테이션을 거의 거르지 않는 투수들이다. 불펜의 임경완과 김사율은 부진할 때도 후배들에게 “우리 책임을 다 하자”고 강조했다. 후반기 불펜의 부활은 롯데 상승세의 중요한 이유다. 송승준은 “지난해 팀 분위기가 자유로웠다면 올해는 다소 체계가 잡혔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지금 롯데에는 이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롯데는 지난 세 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공을 거뒀다. 구단은 올해를 한발 더 전진해야 할 때로 봤고, 막중한 책임을 양 감독에게 맡겼다. 그리고 선수들도 더 높은 목표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루키 감독의 첫 시즌은 현재까지는 90% 성공이다.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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