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서 먹던 도토리, 몸속 중금속 빼주는 웰빙식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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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12일)이 가까워졌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 올해 농사는 풍년일까? 흉년일까?
우리 선조는 풍흉(豊凶)을 도토리로 점쳤다. 도토리 수확이 적으면 풍년이 들고, 반대로 많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도토리 점은 워낙 용해서 “도토리는 산에서 들을 내다보면서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까지 회자됐다.

도토리가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흉년이 들 것 같으면 열매를 많이 맺어 배 고픈 사람들에게 자신이라도 먹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엔 구황(救荒)작물로 요긴하게 쓰였다. 고려 충선왕은 흉년이 들자 반찬 수를 줄이고 수라상에 도토리를 올리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은 흉년에 굶주린 백성에게 도토리 스무 말을 보내면서 “흉년엔 도토리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풍년이 들면 여지없이 ‘개밥의 도토리’다. 개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젊은 사람들은 도토리라 하면 ‘싸이월드’의 ‘사이버 머니’를 먼저 떠올린다. 정작 자연의 도토리는 상수리ㆍ굴참ㆍ졸참ㆍ떡갈ㆍ신갈ㆍ갈참나무 등 참나무의 열매다. 겉이 단단한 견과류의 일종으로 속에 커다란 씨가 있다. ‘고만고만하다’는 의미인 ‘도토리 키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기는 엇비슷하나 모양은 타원형ㆍ구형ㆍ난형 등 다양하다. 흔히 다람쥐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멧돼지도 환장한다.

요즘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ㆍ웰빙 식품으로 찾는 귀하신 ‘몸’이다. 탄수화물(100g당 46.7g)ㆍ지방(3g)ㆍ단백질(4.4g)이 고루 들어 있는 데다 대표 음식인 도토리묵의 열량이 낮아서다. 열량이 도토리 생것은 100g당 221㎉, 녹말은 327∼336㎉에 달하지만 도토리묵은 43㎉에 불과하다. 게다가 도토리에 든 탄수화물과 지방의 대부분이 녹말(전분·복합당)과 불포화 지방(혈관건강에 유익)이다. 도토리 가루는 녹말 덩어리나 다름없다.

웰빙 성분으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아콘산(酸)이다. 국내 학자의 연구를 통해 체내에 쌓인 중금속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서다.

생 도토리를 먹기 힘든 것은 떫은 맛 성분인 타닌 때문이다. 타닌은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다. 감ㆍ녹차에도 다량 함유돼 있는데 변을 단단하게 해 설사를 멎게 한다. 그러나 다량 섭취하면 장내 수분을 빨아들여 변비를 유발한다. 변비ㆍ빈혈 환자에게 도토리 과식을 삼가라고 조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토리 껍질을 까서 잘 말린 뒤 절구로 빻은 것을 물에 오래 담가두면 떫은 맛을 우려낼 수 있다(타닌 제거). 앙금과 물이 분리되면 웃물만 따라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 뒤 가라앉은 앙금을 잘 말리면 하얀 가루가 얻어진다. 이것이 도토리 전분(녹말가루)이다. 이 가루를 물에 풀어 풀을 쑤듯이 끓이다가 끈적끈적하게 엉길 때 그릇에 부어 식힌 것이 도토리묵이다.

메밀묵이 겨울철 간식거리라면 도토리묵은 사철용이다. 도토리가루를 밀가루와 함께 반죽하면 국수ㆍ수제비ㆍ부침개 등 다양한 도토리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한가위엔 맵쌀가루에 도토리가루를 넣어 반죽한 도토리 송편도 즐겨 먹는다. 도토리를 우려서 그 앙금으로 만든 도토리다식(상실다식)은 기침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 ‘기침막이 떡’이라 했다.

살 때는 알이 충실한 것을 고른다. 물에 담갔을 때 무거워서 가라앉는 것이 양질이다. 물에 뜨면 벌레 먹은 것이기 쉽다(국립산림과학원 자원육성과 김상수 박사). 도토리는 2주 이상 방치하면 벌레가 생기기 쉬우므로 껍질을 벗긴 뒤 말려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6개월에서 2년까지 보관 가능하다.

『동의보감』엔 “도토리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떫으며 독이 없다”고 기술돼 있다. 또 “설사ㆍ이질 등을 낫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여 몸에 살을 오르게 한다”고 했다. 또 『본초강목』엔 “곡식과 과실의 좋은 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도토리만 먹어도 보신이 필요 없다”고 적혀 있다.
국내 유통되는 도토리의 약 5%만 국산이다. 대부분(85%가량)은 중국에서 수입되고 일부 북한ㆍ아프리카산도 있다. 국산 도토리의 ㎏당 가격은 3000원 선으로 중국산의 5∼6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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