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50은 성숙,자유,도전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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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호 06면

비로소 내가 되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 아니라 지자유(知自由)가 되는 나이, 내 삶이라는 호텔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 늘 오늘 같기만 하라고 바랄 만큼 좋은 나이, 두려웠지만 다다르니 평온함이 느껴지는 나이, 온전히 내 생각으로 살 수 있는 나이, 자신과의 불화를 마감하는 시기….

2년 전 여성 50인은

2년 전 중앙SUNDAY가 막 50대에 접어든 1959년 60년생 여성 50명에게 50세의 의미를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 가운데 일부다. 당시 중앙SUNDAY는 30대 초반~40대 초반의 여기자 5명으로 취재팀을 꾸려 ‘여자 50세’ 특집을 마련했다. 여성이라는 점에서 취재팀은 응답자들과 기본적 공감대를 갖고 있었지만 누구도 50세라는 나이 자체는 겪어 보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각계 여성 50명이 10여 개 항목에 답해 준 설문결과는 더 놀랍게 여겨졌다. 50세가 돼보지 못한 취재팀이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이들의 답변에는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 대신 성숙·도전·자유·자신의 발견 등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응답자들은 물론 육체적 변화에 따른 힘겨움도 토로했다. 때이르게 시작된 갱년기 증상의 고통, 친구들과 모이면 자녀교육 대신 주요 화제로 떠오르는 건강관리, 커피 한 잔에도 잠 못 이루게 된 밤, 굽 낮은 구두에 대한 선호 등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여성으로서 외면적인 매력은 20~30대 시절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공을 더한 원숙한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양한 질문항목에서 외모든, 일이든, 가족이든 외부의 잣대로 스스로를 얽매고 증명하려 하던 데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답변이 거듭 등장했다.

현재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가족’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특히 배우자에 대해서는 친구·동반자로서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시각이 많았다. 나이 들어 갈수록 친구의 소중함을 새로이 깨닫는다는 답변도 여럿 나왔다. 한 응답자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명예·승진·감투·성공·돈이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미래에 해보고 싶은 일로는 ‘봉사활동’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또 그림, 악기 연주, 외국어, 나 홀로 여행, 소설 집필 등 이제부터 새로운 것을 배워보거나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응답도 많았다. 새로운 일을 이들은 즐겁고 여유로운 도전으로 여겼다. 한 응답자는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일단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은 노년의 롤 모델에 대한 답변에서도 드러났다. 늙어가는 모습이 닮고 싶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활동을 했던 배우 오드리 헵번을 꼽은 응답자가 50명 중 6명을 차지했다. 전체적으로는 어머니, 시어머니, 이웃 노부부 등 주변 어른들을 닮고 싶은 사람으로 꼽은 답변이 50명 중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2년 전 중앙SUNDAY가 조명한 ‘여자 50세’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중심으로 살아온 그 어머니 세대의 50세 무렵과는 분명 달랐다. 이들은 한국전쟁 직후 시작된 베이비붐(1955~64)의 한가운데에 태어났고, 높은 교육열 속에 자랐다. 직전 세대 여성들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최초’라는 테이프를 끊은 데 이어 각계각층에서 본격적인 사회적 활동의 물꼬를 텄다.

이에 착안해 국회의원·기업인·문화예술인·주부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응답자들을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은 이들이 겪어온 벽도 뜻하지 않게 확인했다. 설문에 응해줄 50세 여성 임원을 찾기 위해 문의한 기업들에서 ‘50세는커녕 여성 임원이 아예 없다’는 답변을 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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