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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용역’ 휴지 조각 만든 강현욱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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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보
사회부문 기자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라는 말이다. 지난 7일 대통령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추진위)의 시·군·구 통합 기준안 발표가 딱 그 짝이었다. 추진위의 이날 발표는 지방자치 ‘빅뱅’의 기폭제가 될 거란 관측이 많았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수는 243개다. 너무 많다. 행정의 비효율과 낭비가 넘친다. 그래서 ‘인구 ○○만 이하, 면적 ○○㎢ 이하 도시는 통합대상’이란 발표를 기대했다.

 과한 상상이 아니었다. 추진위의 외부 연구용역 결과도 그랬다. 추진위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특별시 자치구는 인구 27만6000명 이하, 광역시 자치구와 일반 시는 15만 명 이하, 군은 3만3000명 이하가 통합대상에 들어갔다. 면적 규모로는 특별시 자치구는 16.2㎢ 이하, 시·군은 62.46㎢ 이하가 통합대상이었다. 이런 통합기준에 걸리는 곳은 69개다.

 하지만 강현욱 추진위 위원장은 이런 용역 결과를 무시했다. 그는 “용역은 용역일 뿐이다. 관심이 없다”고 했다. 용역결과는 휴지 조각이 됐다. 대신 “인구 또는 면적이 ‘상당히’ 과소한 지역이면 추진위에 통합을 건의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아니어도 가능하다”고 했다. 딱히 기준이랄 게 없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15 경축사에서 시·군·구 통합 당위성을 역설한 지 2년 만에, 지난 2월 추진위가 출범한 지 7개월 만에 내놓은 첫 성과물이 “생각 있으면 신청하세요”였다.

 강 위원장은 ‘자율 통합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으면 주민들끼리 자연스럽게 통합 논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09년 행정안전부가 맡아서 시·군·구 통합을 추진할 때도 같은 기조였다.

 그때 성적표를 보자. 당시 기초단체 46곳이 통합논의에 들어왔다. 결과는 딱 1건 성사였다. 통합 창원시다. 이게 자율통합의 실체다. 정부 마음대로 이 동네 저 동네를 떼었다 붙였다 해서도 안 되겠지만 최소한 어느 지역이 대상이 될지 가늠이라도 하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이 토론을 할 수 있다.

 추진위 올해 예산은 39억원이다. 연구용역에 들어간 돈도 5000만원이다. 모두 세금이다. 이 돈 들여서 나온 결과가 ‘알아서 하세요’라니. 세금이 아깝다.

양원보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