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도 시집과 다를 바 없죠…사람의 영혼에 양식 되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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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씨가 어른을 위한 동화책 『울지 말고 꽃을 보라』를 냈다. “동심을 회복하면 삶이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는 시편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 정호승(61)씨가 어른을 위한 동화 모음집 『울지 말고 꽃을 보라』(해냄)를 냈다. 1998년 출간한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 등 이전에 냈던 동화책 4권에서 골라낸 102편의 글을 묶었다. 핵심만 추린 일종의 ‘개정 완결판’이다. 동갑내기 서양화가 박항률씨의 유화와 펜화도 보태 책의 모양을 냈다.

 책에 실린 동화는 세련되고 깔끔하다기보다 소박하고 솔직한 느낌을 준다. 직접 체험이든 간접 체험이든 정씨가 겪은 얘기를 별다른 가공 없이 차분하게 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뼈저린 후회’라는 제목의 글은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다. 저녁 식사 준비로 바쁜 시간에 찾아온 앞집 아주머니를 다소 불친절하게 돌려보낸 다음날 그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이에 충격 받은 가정주부의 얘기다. 익숙한 얘기지만 이미지가 선명하다.

 ‘실패에는 성공의 향기가 난다’는 못생긴 외모에 좌절한 과일 모과가 자포자기 끝에 고통스럽게 썩어가자 비로소 사람들이 모과 향기의 진가를 알아본다는 얘기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정씨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에는 성공의 향기가 난다”는 교훈을 전한다. 무생물에게까지 감정을 이입해 공감을 불러 일으킨 후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다. 언뜻 정씨의 시에서 느껴지는 감흥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시 같은 동화, 시를 품고 있는 동화다.

 8일 정씨를 만났다. 서정시인에게 동화책 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씨는 “동화책은 어떤 면에서 시집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동화든 시든 사람의 영혼에 양식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을 이해하고 긍정하도록 하는 양식 말이다. 그는 “시든 동화든 그런 양식을 생산할 때 시인은 먹거리를 재배하는 농부와 같다”는 말도 했다.

 이렇게 쓰임새가 같다 보니 시든 동화든 하고자 하는 얘기는 큰 차이가 없다. 정씨는 “사람들이 살면서 상처 받고 분노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을 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런 어려움이 우리 삶의 본질이라는 것, 바닥이 없는 인생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바닥은 발 딛고 일어서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코 앞에 다가온 연휴, 정씨에게 추석의 의미를 물었다.

 “결국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고향에 가는 것 아닐까요. 모성을 찾아가는 거죠. 객지에서 살며 많이 울었을 텐데 어머니라는 꽃의 품에 안겨 향기를 맡고 돌아오는 거 말이에요.”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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