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경제 레임덕? … 총·대선 앞둔 한나라 압박에 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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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표가 7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김황식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홍 대표, 김 총리, 임태희 대통령실장.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소득세를 낮추고 소비세는 올리는 게 정책 기조다. 우물 안만 들여다보고 논의해선 안 되고, 글로벌 관점에서 봐야 한다.”(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8월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답변)

 “감세 철회는 여당이 의원총회에서 결정한 것이다. 감세 철회 못 하면 한나라당 간판 내려야 한다.”(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감세 철회를 둘러싼 당정의 힘겨루기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감세 철회를 강하게 압박해온 한나라당에 정부가 사실상 두 손을 든 것이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는 “감세를 정책 기조로 내걸었던 MB노믹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셈”이라며 “정부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불확실성만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청와대는 체면을 구겼다. MB 경제팀의 수장으로 ‘감세 지킴이’를 자처해왔던 박재완 장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박 장관은 지난달 야당 의원들의 감세 철회 주장에 대해 “국회에서 내년부터 감세를 하도록 뜻을 모아줬던 것”이라며 “번복하는 게 가장 나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총선·대선을 의식해 정치권의 감세 철회 주장을 비판하며 (정치권의 주장은) ‘감세 철회’가 아니라 ‘감세 번복’이라는 말까지 했었다. 가만 놔두면 자동으로 내년부터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가 되도록 이미 정부와 국회가 합의해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건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부터다. 이 대통령은 당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2013년까지 균형재정 달성을 선언했다. 그러자면 감세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때부터 정부는 공식적으론 ‘감세 유지’를 내세우면서도 내심은 복잡했다. ‘세금 덜 걷는다면서 무슨 균형재정이냐’는 정치권 공세를 넘어서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세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지, 반드시 세수가 줄어든다고 할 수는 없다. 세율을 낮춰 경제가 성장하면 외려 세수가 늘어난다는 게 감세 철학의 기본이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감세가 원칙적으로 옳다는 것을 국민에, 정치권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끝까지 설득하는 대신 쉽고 편한 길을 택했다”고 아쉬워했다.

 7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의 감세 철회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다. 대기업에 주로 적용되는 과표 500억원 이상의 법인세 최고세율(22%)은 그냥 유지하기로 했다. 법인세 감세는 정부의 마지노선이었다. 박재완 장관도 “법인세 감세는 예정대로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를 낮춰 기업의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늘리는 국제조세경쟁(Tax competition)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의 입장은 이런 글로벌 경쟁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은 2000년 30.2%에서 현재 23.6%로 낮아진 상태다.

 하지만 경제정책 기조가 지난해 ‘동반성장’에서 올해 ‘공생(共生)발전’으로 계승·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기업 때리기’ 분위기 속에서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혜택이 더 많아지는 법인세 감세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결국 소득세 감세를 ‘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야권이 펼친 전방위 공세에 정부가 법인세 감세까지 철회하며 백기를 든 셈이다. 결국 3년간 끌어온 감세 논쟁은 보수 정권의 대기업·부자 홀대로 끝났다. MB정부의 아이러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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