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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채용, 바람으로 끝나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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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성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은행 창구 업무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이나 경제지식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온라인 조작법과 금융상품을 알고 성실한 고객 응대 자세만 갖추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 상고 출신이 은행에 입사하면 맡았던 창구 업무를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대졸 출신이 차지한 지 오래다. 대졸행원은 좁은 취업난을 뚫고 입사한 만큼 흔히 말하는 스펙도 우수하고 문제해결 능력과 이해력이 뛰어난 인재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신입사원을 교육하다 보면 고졸 행원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음을 느끼곤 한다.

 고졸 은행원은 대졸 출신에 비해 더 어렵게 입사한 만큼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야근이나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타인과 더 협조하는 등 사회성도 두루 갖추고 있다. 은행·보험업계에선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차별을 딛고 일어선 톱 클래스의 인물이 의외로 많다.

 최근 정부가 ‘공생발전 고용사회 구현’을 위해 공공기관 채용과 승진에 있어 고졸자와 대졸자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연합회도 향후 3년간 고졸 인력 2700명을 채용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학벌지상주의, 대학입시, 반값등록금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성공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학력별 급여 차이 개선 등 후속 조치도 시급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잡코리아의 자료에 의하면 고졸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 임금이 154.4에 달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 이유가 고졸 학력으로는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며, 급여의 차이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경쟁력 측면에서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직원 1인당 수익률을 따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고임금 대졸자에게 단순 창구 업무를 맡기는 것은 은행경영 면에서도 큰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동안 취업 시기 연장과 사교육비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큰 원인이었다.

 정부 정책이 발표됐다고 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실업계 고교의 진학률과 취업률 개선 대책이 있어야 하며, 학력 간 임금격차 해소 등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성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