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12대, 테이프 2만개 … 시청자 홀리는 ‘악마의 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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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의 선두 주자인 케이블 Mnet의 ‘슈퍼스타K3’ 열기가 뜨겁다. 김용범 CP는 “첫 회부터 시청률이 10% 가까이 나와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옛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했던 거군요.”

 아, 그랬었구나. ‘슈퍼스타K 3’(이하 슈스케) 3회(지난달 26일) 말미에 등장해 “아메리칸 아이돌(미국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는 말을 던졌던 미국인 크리스. 방송 후 인터넷을 도배했던 ‘크리스의 비밀’이 4회에서 드디어 풀렸다.

 이제 노래를 들어볼 차례. 그런데 몸을 한 뼘 앞으로 내미는 순간 화면이 일시 정지되더니 “잠깐, 크리스의 노래를 듣기 전에”라는 코멘트가 흘러나온다. 1주일을 기다렸는데 이건 또 뭔가. 이렇게 되면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다.

‘슈퍼스타K’의 또 다른 재미는 심사위원들의 독설과 재치다. 시즌 3 본선 심사를 맡은 가수 이승철·윤미래·윤종신.(왼쪽부터)

 지난달 12일 첫 방송된 슈스케 시즌3에 대한 반응이 ‘뜨거움’을 넘어섰다. 4주 연속 지상파TV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2일 방송(4회)에서는 시청률 10.7%를 기록했다.

 슈스케는 지난해 허각·장재인 등을 배출하며 자리를 공고히 했지만 시즌3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지원자들에 ‘편집의 마력’이 더해지며 승승장구 중이다. 슈스케를 처음부터 이끌어온 김용범 CP(책임프로듀서)를 만나 그 노하우를 들어봤다.

 ◆최고의 매력은 다양함=슈스케3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교차·묶음편집이다. 비슷한 반짝이 의상을 입은 왕언니팀과 젊은 여성 댄스그룹을 교차 편집해 웃음을 주고, 티아라 지연의 오빠 등 연예인 가족 지원자를 함께 묶어 비교하는 식이다. 김 CP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힘은 다양한 인간군상에서 나온다. 재미있고 독특한 사람을 시간상 다 보여줄 수가 없어 그 돌파구로 ‘캐릭터별 묶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편집은 찍은 분량이 많아서 가능하다. 지역 예선 오디션 현장마다 12대의 카메라가 돌아갔고, 지금까지 찍은 총 테이프 수는 2만 개가 넘는다. 촬영·편집에만 17명의 PD가 매달린다. 김 CP는 “현장 구석구석을 모조리 찍기 때문에 돌려서 보고 또 보다 보면 재미있는 캐릭터와 서사가 자연스레 발굴된다”고 했다.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소소한 재미를 줬던 출연자들의 경우도 그렇게 발견했다. 마이크 다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며 ‘소심증’으로 웃음을 준 한 고교생은, 노래만 보여줬다면 ‘잘하네’ 정도로 끝났을지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건, 재미도 주지만 패자에겐 또 다른 기회도 준다. 제작진이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김 CP는 “떨어진 참가자들에게 (기획사의) 러브콜이 벌써 60여 건 들어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여기서 잠깐’의 긴장감=김 CP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다음을 궁금해하도록 하는 것이 편집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톡톡 튀는 지원자들은 비교적 빠른 템포로 내보내고, 사연 있는 출연자들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중요한 발언 전 ‘일시정지’하며 잠시 미뤄놓는 이유다. 클라이맥스는 ‘60초 후에 공개한다’며 중간광고 후 공개하곤 한다.

 김 CP는 “중간광고로 인해 맥이 풀릴 수도 있는데 오히려 긴장감 주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저희 (제작진) 차원에서도 진화가 된 것 같다”고 웃었다.

 ◆감동과 논란의 쌍곡선=슈스케는 주목을 받는 만큼 논란도 많다. 탈락한 지원자가 기구를 부수거나, 심사위원을 향해 험한 말을 내뱉는 장면이 전파를 타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베이징 예선 심사위원을 맡은 가수 김태우가 한 여성 참가자를 두고 외모 관련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김 CP는 “누군가의 말대로 감동도 슈스케 재미도 슈스케 논란도 슈스케인 것 같다”며 “김태우씨의 발언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외모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사위원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과감히 내보냈다”고 말했다. 참가자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면 설사 논란이 된다 해도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소위 ‘감’을 유지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을까. 그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누구는 애를 낳고, 누구는 직장을 얻고, 누구는 결혼했다 식의 소소한 이야기, 어머니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이야기를 항상 귀담아 듣는다”라며 웃었다. ‘슈스케’를 3년째 수직 상승시켜온 그만의 비결이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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