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들어 가는 PC

중앙일보

입력

성전(聖戰)에 돌입한 마이크로소프트社 관계자처럼 사람 기를 꺾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휴대용 기기 부문 담당 부사장 벤 월드먼은 뉴스위크를 방문, 휴대용 컴퓨터를 위한 윈도 CE의 최신 버전을 선보였다. 그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워싱턴州 레드먼드에 본부를 둔 공룡기업 마이크로소프트는 팜 기종이 장악하고 있는 휴대용 정보 단말기(PDA) 시장에 이미 두 차례나 진출하려 했지만 매번 고배를 들어야 했다. 실질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큼직한 운영체제는 비싸고 다운이 잦은데다 배터리 수명도 형편없었다.

컴퓨터 관련업계 조사업체인 PC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PDA 시장에서 팜의 점유율은 1998년의 68%에서 1999년에는 76%로 상승했다. 그 결과 필립스社는 니노 PDA 사업을 포기했고, 소니社는 올해 하반기 출시될 자사 PDA에 팜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 형식으로 장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우 완강하다. 월드먼은 고집스럽게 단순성만 강조하는 팜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팜은 지난 4년 동안 소비자들을 세뇌해 왔다. PDA에 온갖 기능을 모두 갖출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능성과 편이성을 겸비할 수 있다.” 세번째가 되는 이번 도전은 과연 소비자들을 매료시킬 것인가?

그래야만 한다. 기업들이 휴대폰·TV·비디오 게임기·냉장고 등 전자제품이라고 생긴 것은 뭐든 인터넷과 기능을 통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지금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이른바 미래의 ‘脫PC’ 시대에서 확실히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사장이 지난주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최신제품 ‘포켓 PC’를 직접 소개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발머는 “지난 25년 동안 사무실 책상마다, 온 가정마다 컴퓨터 한 대씩 갖추게 만드는 일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임무였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느 기기든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전쟁에 속히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PDA 시장에서 자리잡고 성공하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실패를 솔직히 인정했다.

휼릿패커드·카시오·컴팩의 PDA 제품에 사용되는 포켓 PC 운영체제는 윈도 CE의 이전 버전들보다 기능이 향상된 것이다. 메모장·주소록·일정표는 마침내 팜 수준에 이르렀다. 일반 PC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으로 전자우편을 읽는 사용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키보드가 화면상에 표시되는 것외에 향상된 필적 인식기능까지 추가됐다(그러나 난필인 소비자에게는 키보드를 권하고 싶다). 업무기능만 있고 오락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쉽게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이크로소프트 리더, 디지털 음악이나 비디오를 듣고 보게 해주는 미디어 플레이어, 그래픽 웹 검색용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있다. 게다가 카드게임 솔리테어가 없다면 완벽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여전히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윈도 CE 이전 버전들에 대한 자아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같은 인터페이스가 소형 화면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그런 인터페이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팜은 불편할 게 별로 없는 인터페이스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지만 포켓 PC에는 거치적거리는 게 많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작’ 버튼을 기존의 화면 하단에서 상단으로 옮겼으나 ‘편집’·‘도구’ 같은 항목은 여전히 하단에 배열돼 있다. 어떤 메뉴를 누르다 보면 ‘정의’(Define)와 ‘자동 할당 응용프로그램’(Auto Assign Applications) 같은 옵션이 튀어나오는데 아무런 기능 설명도 없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윈도처럼 통하기를 바라며 화면 이곳저곳을 필사적으로 눌러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반 정도가 먹혀든다. 포켓 PC는 대당 가격이 4백99∼5백99달러(팜 PDA는 1백49∼4백49달러)나 돼 이전 제품 신세를 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경쟁은 계속된다. 무선 업무용 전자우편 관리를 가능케 해 절찬받은 블랙베리 호출기 생산업체 리서치 인 모션도 팜 크기 만한 제품을 출시했다. 게다가 팜의 신임 최고경영자 칼 얀코프스키는 자사의 명성이나 성공적인 주식공개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낡은 무선조종 비행기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자칭 ‘기계광’ 얀코프스키는 소비자 중심적인 접근법을 유지하기 위해 소니·애플 간부 출신들을 영입해 왔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소비자를 배려할 수 있다면 터무니없는 꿈들이 실현되겠지만 그들의 핏속에는 원래 그런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겉치레 기능을 놓고 마이크로소프트와 맞서기보다 몇몇 핵심 부문에 주력한다.

무선 접속, 인스턴트 메시지, 전자우편 도착 알림, 음성 통합, 안전한 전자 상거래 등이 그것이다. 얀코프스키는 올 크리스마스 전까지 Y세대 시장을 겨냥한 저렴한 제품을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기능만 아니라 모양까지 갖추기 전에는 포켓 PC가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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