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잡설 ⑬ 무상급식과 미식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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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무상급식 문제로 기어이 투표까지 하면서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긍정적으로 보면 그만큼 형편이 되니 이런 소동도 겪는 것 아니냐고 자위하는 이들도 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 맞는 말씀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자식 네 명의 도시락을 싸느라 허리가 휘었다. 밤 공부를 하는 형제에게는 두 개를 쌌다. 그러니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제각기 양은과 ‘스덴’으로 된 도시락에 퍼 담은 밥이 자욱하게 김을 피워 올리던 우리 집 아침 풍경이 기억난다.

 여러분은 도시락에 담기던 그 반찬을 기억하시는지. 멸치볶음, 콩자반, 김치볶음, 어묵볶음에 급한 대로 단무지까지(간혹 밥 밑에 달걀부침을 슬쩍 넣어주시지는 않았는지)…. 어머니는 그렇게 산처럼 쌓아 놓은 도시락을 마련하고는 출근까지 하셨다. 어머니로서는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무상급식 혜택 같은 거, 전혀 못 받으신 왕년의 도시락 대장으로서 아마 이번 주민투표를 보고 한마디 하셨을 것이다.

 “쯧쯧, 안 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긴 하는데 언제 하나, 뭐 이런 걸로 사람들끼리 감정 상해서 되겠나.”

 어쨌든 무상급식은 복지의 상징처럼 되었고, 우리 아이들이 세금의 혜택을 보아 무상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이면의 자잘한 논쟁에 끼어들 능력은 없지만 나는 이 사안을 지켜보며 다른 생각을 한다.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은 아니라는 염려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내가 모시던 주방장은 지역 슬로푸드의 회원이었다. 그 회의를 나도 구경꾼으로 참관했다. 요리사·의사·교사·영양학자·언론인·농민·치즈생산업자 등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구성원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심각하게 토론을 하곤 했는데, 놀랍게도 주제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이었다. 의사는 고기에 남아 있는 성장호르몬 문제를 거론했고, 영양학자는 지역 어린이의 고기 소비량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까지 들고 나와 발표했다. 모두 심각하게 오랜 시간 토론했다.

 주방장이 한번은 나를 데리고 출타했다. 어느 초등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아이들과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으면서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지역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주렁주렁 스파게티가 열리는 나무 따위는 없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마트에 예쁘게 포장된 고기나 깡통에 들어 있는 햄이 막 숨 쉬던 지구상의 한 생명에서 비롯한다는 윤리도 배웠다. 아이들은 밀가루를 주무르며 놀이를 통해 요리를 배웠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깨쳤다.

 이탈리아가 자국의 음식문화를 꽃 피우고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건 이런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심지어 피자의 두께와 무게, 올리는 토핑, 토마토의 원산지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나선다. 반드시 손으로 빚어 전통의 나무 화덕에 넣어 구운 것이라야 진짜 나폴리 피자라는 인증을 해준다. 정부의 이런 관심은 피자를 둘러싼 재료 생산자, 식당 주인, 요리사, 소비자가 한 몸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그렇게 해서 이탈리아적인 좋은 피자는 전통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세 끼 먹는 음식으로 우리 몸을 지탱한다. 음식이 곧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음식을 올바로 먹어야 한다는 건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음식이 몸이라는 내연기관을 움직이는 칼로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깃드는 ‘무엇’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아직 우리는 음식을 영양학적으로만 접근한다. 예를 들어 김치 한 쪽의 비타민·섬유질·칼로리는 계산하지만 어떤 김치가 우리 몸과 정신을 살찌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이미 선진국은 음식이 가진 철학적 함의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주는 급식이 단순한 열량 공급이 아니라 교육의 연장선이라는 건 이번 투표를 통해 의견 일치를 본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짜 음식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때다. “네가 무엇을 먹는지 알려달라. 그러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던 한 프랑스 문인의 말을 곱씹게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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