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금강산 면회소…북한 “그냥 내버려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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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이 집중호우로 침수된 금강산 남북이산가족면회소를 복구하려던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접근을 막고 그대로 방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4일 “지난 7~8월 금강산 지역의 폭우로 지하실은 물론 면회소 1층 로비와 연회장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한적 등이 대북 접촉을 통해 ‘물이라도 빼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북측은 ‘그냥 내버려 두라’며 거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아산 측 관계자도 “지하실 전력시설과 보일러 등이 침수됐으나 제대로 된 복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강산면회소는 우리 국민 세금 550억원을 들여 12층 규모(객실 206개)로 2007년 12월 준공식을 가졌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우리 정부에 압박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면회소 관리인력을 추방했고 지난달에는 동결·몰수했던 남측 당국·민간 재산을 일방적으로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추석(12일)을 계기로 한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행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산상봉을 제안해 왔었고 2009년에도 추석 상봉이 성사됐다. 정부 당국자는 “금강산 남측 인력을 모두 추방하는 등 극단적 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북한이 이산상봉을 위해 금강산 문을 다시 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금강산 면회소를 몰수한 북한이 침수까지 방치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산가족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장은 “인도주의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을 볼모로 달러벌이용 관광 재개를 압박하는 북한의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고 비판했다.

 2002년 본격화된 면회소 건설을 위한 남북협상에 관여했던 한 당국자는 “북한은 서울 신라호텔 규모로 면회소를 지어달라고 요구했으나 진통 끝에 3분의 1 규모로 결정됐다”며 “이산가족 면회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금강산 관광과 무관한 면회소를 몰수하겠다고 나선 북한에 대해 통일부나 한적이 아무런 대응 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12만 명의 상봉 신청자 중 4만 명 이상이 고령 등으로 숨진 절박한 상황인데 한 차례의 상봉도 없이 해를 넘길 상황이 되자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철 위원장은 “남북관계 경색이란 한계가 있지만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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