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큰 중국, 날카로운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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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그는 아직도 35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중심에 있는 김진숙 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얘기다. 8개월째다. 희망버스는 이 문제를 정치 이슈화했지만 그의 ‘고공 투쟁’은 우리나라 산업계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통의 태동은 중국에서 시작됐다. 2001년 11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시장개방 효과로 무역량이 급격히 늘었다. 수출은 매년 20~30%씩 증가했고, 철광석 등 자원 수입도 급증했다. 해운업계는 선박이 없어 아우성이었다. ‘조선회사’라는 이름만 내걸어도 배를 수주할 수 있는 시기였다. 국내 업계에 투자 붐이 일었다. 부품 기자재 업체들도 완성 배를 만들겠다며 독 건설에 나섰다. 2006년 남해안에 ‘조선 벨트’가 형성될 정도였다.

 그때 우리가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이웃 중국의 동향이다. 중국에는 ‘국수국조(國輸國造)’라는 정책이 있다. 자국 물동량은 자국 배가 처리한다는 뜻. ‘선박 국산화’인 셈이다. 대규모 조선산업 육성 방안이 발표됐다. 동부 연안 도시에 비 온 뒤 죽순 돋아나듯 조선업체가 생겼다. 두 나라가 투자 경쟁을 벌였던 셈이다.

 호황이 있으면 불황이 있는 법.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신생 독은 애물단지로 변했다. 피해는 한국 몫이었다. 중국 기업에는 국가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국유은행)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수주량을 늘렸다. 반면 한국 업계는 C&중공업이 쓰러지는 등 가혹한 구조조정에 시달려야 했다. 한진중공업도 피해가지 못했고, 지금의 고통이 싹튼 것이다.

 중국을 고려했어야 했다. 투자에 매달리기보다는 완성 배 업체와 기자재 회사 간 공급 사슬을 정비하고, 부품 기술개발에 매진했어야 했다. 정부는 정책 수립에 중국 상황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그들과의 규모 경쟁은 무모한 일이다. 규모라면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대, 최고니 말이다.

 다행히도 조선업계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을 제치고 세계 제1위 조선 국가로 등장했다지만 기술 함량이 낮은 벌크선 위주였다. 올 상황은 다르다. LNG·드릴십(석유시추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발주가 쏟아졌고, 우리나라 업체가 거의 독식했다. 독보적 기술 덕택이다. 덕택에 ‘조선 대국’ 자리도 회복했다.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큰 중국과의 경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날카로운 기술력을 갖는 것뿐이다. 자동차·철강·화학·IT 등 중국과 경쟁 접점에 있는 분야가 다 그렇다. 중국이 벌크선을 만들면 우리는 드릴십으로 대응하고, 그들이 옷을 많이 만든다면 우리는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 나라 전체를 R&D(연구개발)센터로 만들라는 얘기다. 어디 경제뿐이랴. 정치·외교·문화 등에서도 날카로움이 있어야 규모의 중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우리가 한진 사태를 다루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교훈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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