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뮤지컬 따라하다 … 영암군 430억짜리 과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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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상 시리즈’의 한 장면.

세계적 관광지인 중국 구이린(桂林)의 리장(漓江)과 항저우(杭州)의 시후(西湖)에서, 거장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국가적 지원을 받아 공연하는 뮤지컬 인상(印象) 시리즈를 전남 영암군에서 재연할 수 있을까.

 영암군(군수 김일태)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온 사업이 산수(山水) 뮤지컬이다. 2014년까지 430억원을 들여 월출산 사자저수지 위 수상무대에서 뮤지컬을 공연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용역비 등으로 8억8000만원이 지출됐다.

 그러나 민간투자를 유치하지 못해 사업이 무산될 처지다. 군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수익성이 없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경북관광개발공사가 인상 시리즈를 모방해 경주 보문호에 세운 수상공연장을 예로 들었다. 160억원의 민자 유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50억원짜리 공연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말 감사관을 보내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산수 뮤지컬은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지자체장의 과욕 ▶장밋빛 타당성 조사 ▶부풀린 민자 투자계획 ▶편법적인 투융자 심사 대응이다. 세계적인 감독이 세계적인 관광지에서 펼치는 공연을 지방에 재현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무리다. 군 의회 이보라미 의원은 "‘5년 뒤 100억원 이상의 수익과 1000억원이 넘는 생산유발 효과’라는 타당성 조사의 전망은 검증되지 않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300억원 이상인 경우 행정안전부의 투융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사업비를 290억원으로 줄였다가 전남도 감사에서 적발됐다. 다시 행안부 심사를 준비했으나 민간 투자자가 투자의향을 철회해 서류도 제출하지 못했다.

 본지 세감시(稅監市) 시민 CSI(과학수사대) 단장인 이석연(법무법인 서울 대표) 전 법제처장은 “영암군 사례는 예산낭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전형”이라며 “투융자 심사 같은 견제장치를 더 엄격히 가동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부문=이승녕·고성표·박민제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최누리(명지대 문예창작 4) 인턴기자

◆장이머우=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공연을 총 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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