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알제리 망명 대기 사하라 오아시스서 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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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부테플리카 대통령

도피 중인 리비아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의 소재에 대한 단서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국제문제 전문가인 전직 미국 고위 관료가 카다피에게 ‘정권유지 노하우 컨설팅’을 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단독 입수한 카다피 정권의 비밀문서를 근거로 “미국의 유력자들이 시민군의 봉기 초기부터 카다피가 권력을 놓치지 않도록 도우려 한 증거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도 이를 인용 보도 했다. 이 문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리비아 정보기관 본부에서 발견됐다.

 8월 2일자로 돼 있는 문건에는 카다피 정권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포시즌호텔에서 데이비드 웰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와 만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웰치 전 차관보는 2008년 미국과 리비아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알자지라는 소개했다.

 웰치 전 차관보는 우선 국가 간 선전전에서 이기는 법을 조언하며 군사적으로 투명한 것처럼 보이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시민군의 기반을 흔드는 방법도 알려줬다. 그는 “시민군이 알카에다 등과 관련 있다는 정보를 찾아 미 정부에 건네주되, 꼭 이스라엘·이집트·모로코·요르단 가운데 한 나라의 정보기관을 통해 전달하라”고 조언했다. 이들 국가에서 얻은 정보처럼 보여야 미국이 믿게 된다는 것이다.

문서에는 카다피가 시리아 사태를 이용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 웰치 전 차관보는 “(정부군이 주민을 대량 학살했어도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시리아 사태에서 드러난 미국 정책의 이중성을 지적하면 서방국가들을 당황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민간인이 개인적으로 여행을 간 것일 뿐”이라며 “미국 정부는 어떤 메시지도 전달한 적 없다”며 미국이 카다피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카다피는 알제리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리비아와 알제리 국경의 한 마을에서 대기 중이지만 알제리 당국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제리 현지 신문 엘 와탄은 “카다피가 리비아 서쪽 끝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인 가다메스에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있으며 입국을 위해 알제리 당국과 협의하려 하고 있다”며 “하지만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이 카다피의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민군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 떨어진 사막 도시인 바니 와리드에 머무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1일 시리아의 알라이TV를 통해 방송된 음성 메시지를 통해 “리비아인들은 끝까지 침략자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리비아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카다피의 두 아들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은 시리아 방송사 라이TV와의 전화연결에서 “우리는 건재하며, 시르테에서 2만 명이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3남 사디(38)는 협상과 항복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시민군이 리비아를 이끄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알아라비야TV가 보도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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