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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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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양은 진나라 왕자였지만 초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살았다. 이때 거상(巨商) 여불위의 첩을 보고 한눈에 빠졌다. 빼어난 무용수였던 그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을지 타진해 봤다. 책사(策士) 기질의 여불위는 아까웠지만 훗날을 보고 양보했다. 장양은 그녀를 아내로 맞았고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훗날 큰 인물로 자랐다. 진시황제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장양인지 여불위인지 분명치 않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여불위의 자식이라고 적고 있다. 장양에게 시집갈 때 이미 임신 중이었다는 것이다. 초나라 상인의 사생아가 중국 천하를 처음 통일하고 시(始)황제가 된 것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눅 2:19) 마리아는 성령의 잉태로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전해준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절대 함구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찾아와 전한 천사의 말도 속으로만 새겼다. 박해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 비밀은 오늘날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알고 있지만 예수 자신은 언제쯤 알았을까. 청소년 시절 예수는 아버지에 대해 어떤 의문을 제기했고 마리아는 어떻게 설명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일만큼 답답한 일이 있을까. 친부모가 더없이 밉다 해도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일 게다. 출생의 비밀을 캐는 과정엔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생산된다. TV드라마나 소설·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다. 한국계 여감독 제니퍼 여 넬슨(39·한국명 여인영)이 연출한 ‘쿵푸팬더2’에도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주인공 포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56)도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살았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연사로 가서 처음 털어놓았다. 그의 친부모는 대학원 시절 만나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자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다. 여자는 혼자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아이를 낳고 바로 입양시켰다. 몇 달 뒤 여자 아버지가 돌아간 뒤 두 사람은 결혼했다. 하지만 4년 만에 갈라섰다. 올해 80세인 그의 생부는 잡스가 자신의 아들이란 걸 2005년 알았다고 한다. 그 뒤 가끔 e-메일을 보냈지만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현재 카지노 부사장으로 있는 그가 죽기 전에 아들과 커피 한잔이라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아들은 췌장암이 심해 최근 애플 경영사령탑에서도 물러났다. 두 사람이 만났으면 좋겠다.

심상복 논설위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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