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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공소시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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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지방검사 노먼 간은 1999년 체포하지도 못한 연쇄강간범을 기소한다. 이름은 ‘존 도(John Doe)’, 우리로 치면 ‘홍길동’이다. 신원 미상의 범인을 기소부터 한 건 공소시효(公訴時效) 6년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아서다. 이런 황당한 기소가 가능했던 건 범인의 DNA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 이름을 몰라도 ‘충분히 식별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공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위스콘신주는 아예 2001년 DNA 정보가 있으면 공소시효 적용의 예외가 되도록 법을 개정했다.

 공소시효는 범죄가 발생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명분은 법적 안정성 유지다. 그러나 정의 실현에 역행하는 부당한 면죄부란 비판도 적지 않다. “공소시효 제도는 오히려 정의 실현에 대한 장애물이며 불의의 의지처”라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공소시효 연장·배제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5·18민주화운동특별법’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특별법’이 대표적인 경우다. 내란죄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례로 전두환·노태우 전직 두 대통령을 처벌할 수 있었다. 법적 안정성보다 실질적 정의를 우선한 것이다.

 아동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없애는 추세다.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에야 제대로 피해 사실을 깨닫고 가해자 처벌을 원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 못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0년 성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했고, 영국과 미국의 상당수 주(州)도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은 미성년자 성범죄 공소시효가 만 20세 성인이 된 후 10년까지다. 미흡하다. ‘나영이’ 아버지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는 까닭이다.

 해외 도피 사범에 대해선 국외 체류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한다. 사실상 공소시효가 연장되는 셈이다. 죄 짓고 해외로 도망가 공소시효가 지나기만 기다리는 건 바보짓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후보 사퇴 대가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네면서 공소시효를 잘못 계산해 스스로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그래서 선거 후 8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야 돈을 주기 시작한 모양이다. ‘돈을 건넨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새로 시작’하는 걸 간과했다. 파렴치한 선거사범들에겐 ‘무한 공소시효’를 적용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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