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검사권한 대폭 강화…법 개정안 2년 만에 국회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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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은행의 권한을 크게 강화한 한은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고 한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238명 중 147명이 찬성했고 55명은 반대했다.

 이번에 통과된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의 금융회사 검사·조사권한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논란이 돼왔던 한은 단독조사권은 부여하지 않는 대신 한은이 공동조사를 요구할 경우 금융감독원이 1개월 내에 응할 것을 대통령령에 명시하도록 했다. 지금은 한은과 금감원이 맺은 양해각서(MOU)를 통해 공동조사가 이뤄져 왔다. 한은이 직접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범위도 현재의 ‘은행지주회사 및 은행’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으로 확대됐다. 이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보험·증권 등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한은이 직접 자료를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제2금융권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권은 그동안 한은과 금융위원회·금감원이 갈등을 빚은 주된 이슈였다.

 또 은행이 발행한 금융채에 대해 한은이 지급준비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신설됐다. 현행 한은법에서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지급준비율 최저기준만 정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에선 금통위가 지준 적립 대상채무와 지준율, 지준 보유기간과 방법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예금은행의 총수신에서 금융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2001년만 해도 4~5% 수준이었지만 2003년 들어 10%대로 높아졌고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9월에는 19%를 넘기기도 했다. 금융채에도 지준금을 물리면 은행에 묶이는 돈이 많아져 유동성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제어하기 쉬워진다.

 수정안은 한은의 기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은의 설립목적에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안정에 유의할 것’이란 문구를 새로이 추가했다. 지난 2009년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이후 금융감독기능의 약화를 우려한 정무위 반대로 법사위에서 장기 표류돼 왔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선 본회의 표결 직전 상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날 김중수 한은 총재는 개정안 통과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료 제출을 요구할 제 2금융권의 범위에 대해 “전체 640여 곳을 다 하진 못하겠지만 대형사는 범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금융당국과 협의를 거쳐 11월 말까지 시행령으로 대상을 정할 예정이다. 한은의 조사권 강화로 은행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에는 이렇게 답했다. “학생이 시험 싫어한다고 시험을 안 볼 순 없지 않나. 금융위기를 막으려면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할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하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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