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강정마을 손놓고 있다가 애꿎은 경찰만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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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강정마을 경찰 억류사건 등 최근 불법집단행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임정혁 대검 공안부장은 공안대책협의회 소집과 불법행위자 엄단 등의 내용을 담은 대책을 한상대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조현오 경찰청장도 이날 윤종기 충북경찰청 차장을 제주경찰청으로 파견해 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전날 서귀포서장을 경질하고 경찰청 감찰인력을 급파해 제주청 차원의 책임 소재 파악에 나선 데 이어 연달아 인사 조치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및 공안 당국 관계자들의 뒤늦은 대응이 강정마을 사태를 불러일으켰고, 공권력(公權力)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2009년 용산 재개발지역 철거민 농성사태 이후 공권력 도전세력에 대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불법집단행동에 대처하는 당국의 미온적 태도가 계속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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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의 경우 지난해 12월 이 지역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결의하면서 중요한 공안 문제로 부각됐는데도 불구하고 청와대 등 관계기관이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지난 3월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 외부세력과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지난 6월 공사가 중단됐다. 시위과정에서 해군대령이 시위대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안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대통령은 물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이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등 이번 사태를 방관한 측면이 있다”며 “사태가 악화되자 애꿎은 경찰관만 징계했다”고 밝혔다.

 최근 노동조합과 대학생 단체들이 주말 도심집회에서 신고 내용과 달리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행진을 하거나, 북한인권 고발영화 상영을 중단시키는 등 불법집단행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불법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의 서울광장 차벽 설치에 대해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법질서 원칙에 혼란을 더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Theory)’ 이론에 따라 당국이 사소한 불법행위라도 원칙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82년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주창한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한 범죄와 무질서를 방치하면 더 심각한 범죄를 야기한다는 이론이다. 동국대 법학과 김상겸 교수는 “ 많은 사람이 공권력을 무시한다고 해서 이것이 민주주의인양 여기는 풍조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며 “떼를 쓰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하면 준법정신은 사라지고 만다”고 말했다.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제성호 교수도 “무관용 원칙이란 ‘관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법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공공사업에 대한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법적 절차에 따른 국책사업을 일부 사람이 좌지우지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무관용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날 공안대책협의회에서 마련된 원칙을 주말 열리는 집회에서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주말 서울 인왕산·광화문광장 등에서는 ‘제4차 희망버스’ 행사가 계획돼 있다. 경찰은 45곳에 대한 집회·행진신고 가운데 주요 도로를 행진하는 시위 등은 교통체증 등을 감안해 금지했다.

이동현·김현예 기자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사소한 위법행위도 죄질이 나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원칙. 불법 행위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경우 불법의 범위가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입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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