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10개 … 0.01초에 운명 건 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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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다이론 로블레스 12초87, 류샹 12초88, 데이비드 올리버 12초89.


10개의 허들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남자 110m 허들(결승 29일)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뜨거운 전쟁터가 돼 버렸다. 류샹(28·劉翔·유상·중국)이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 데이비드 올리버(29·미국)와 기술과 빠르기를 겨룬다. 세 선수의 뜨거운 각축은 타이슨 게이(미국)와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의 불참으로 열기가 식어 가는 남자 100m를 넘어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떠올랐다.

 류샹이 부활한다면 중국이 들썩일 것이다. 그는 흑인 선수가 지배해 온 단거리의 성역에서 ‘황색 쿠데타’를 일으켰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아시아 선수론 처음으로 단거리 종목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2006년엔 12초88로 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남자 허들에서 올림픽·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세계기록까지 세운 선수는 류샹뿐이다.

 류샹은 중국 스포츠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기권하고 말았다. 중국의 도약과 발전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가 류샹이었다. 그의 기권은 엄청난 충격으로 남았다. 이후 류샹은 슬럼프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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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베를린 대회를 건너뛰고 재활에 매달린 류샹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3초09로 우승하며 재기했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다이아몬드리그에선 올 시즌 2위 기록인 13초00을 찍었다. 첫 허들까지 발걸음 수를 8보에서 7보로 줄이며 스피드가 붙었다. 류샹은 “부담은 없다. 내가 만족하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승에 굶주리기는 로블레스도 마찬가지다. 로블레스는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2년 동안 모든 대회를 휩쓸고 싶다”고 했다. 기록으로 보면 로블레스가 110m 허들의 최강자다. 2008년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골든스파이크 국제육상대회에서 12초87을 찍어 류샹의 세계기록을 0.01초 경신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로블레스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인연이 없다. 2007년 오사카 대회 4위,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선 허벅지 부상으로 준결승 도중 기권했다. 그가 “내년에 런던 올림픽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이번 세계선수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올리버는 그동안 ‘넘버3’ 대접을 받아 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이 그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올 시즌 랭킹 1위(12초94)로 류샹(2위)과 로블레스(3위)를 앞선다. 개인 최고 기록은 2010년 세운 12초89다. 지난 5월 대구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우승해 대구와 인연도 깊다. 올리버는 “스타트만 좋으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다. 금메달을 향해 달리겠다”고 말했다.

대구=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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