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오세훈 승리” 하루 만에 “오세훈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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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한나라당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조찬간담회장에 들어선 홍준표(사진) 대표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국익이나 당보다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건 당인 의 자세가 아니다”며 오세훈 시장의 사퇴를 공개 비판했다. 비공개 회의에선 비판 수위가 더 올라갔다. “어젯밤 10시쯤 오 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내면서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오후에 당사로 돌아와선 참모들에게 “오세훈은 이벤트로 출발해 이벤트로 끝났다. 오세훈은 오늘로써 끝”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24일 주민투표 개표가 무산된 직후 홍 대표는 25.7% 투표율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라는 주장까지 내놓았었다.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오 시장을 감싼 건 그의 조기사퇴를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 그런데도 오 시장이 조기사퇴를 강행해 버리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당내에선 ‘오세훈 사퇴 정국’에 가장 피해를 본 게 홍 대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홍 대표는 오 시장의 즉각 사퇴로 인해 서울시장 보궐선거(10월 26일)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패하면 대표직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 시장으로 인해 취임 50여 일 만에 맞는 고비다.

  고려대 선후배(홍 대표 행정학과 72학번, 오 시장 법학과 79학번) 사이인 두 사람은 정치적으론 악연(惡緣)이 더 질긴 편이다.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2006년 5·31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국면에서 홍 대표는 당시 맹형규 의원(현 행안부 장관)과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였었다. 그러다 경선을 보름 앞두고 뛰어든 오 시장에게 밀려 후보직을 놓친 적이 있다. 당시의 앙금이 작지 않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 국면에선 세 차례나 대립했다.

 홍 대표는 오 시장의 주민투표 발의를 말렸으나 오 시장은 듣지 않았고, 홍 대표가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지 말라고 종용했으나 오 시장은 거절했다. 홍 대표의 조기 사퇴 만류까지 오 시장은 일축해 버렸다. 오 시장으로 인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 홍 대표는 오후 내내 당사에 머물며 보궐선거 대책을 숙고를 시작했다. 최측근인 김정권 사무총장은 “일단 (시장 후보) 인물부터 찾아야 한다”며 “당 내외를 막론하고 문호를 활짝 열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이 될 ‘복지론’도 재정비하고 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무상복지에 투입하는 돈은 30~40대의 노후자금” “피자 1판을 4명이 나눠먹다 6명이 나눠먹으면 돌아갈 파이가 줄어든다” 등의 반격논리를 쏟아냈다. 홍 대표 핵심 측근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27일)에서 홍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며 “ 전략을 정하는 데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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