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측, 선거 8개월 뒤 3차례 나눠 송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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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박명기(왼쪽) 서울교대 교수가 곽노현(오른쪽) 당시 후보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와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실천 협약식’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검찰이 26일 지난해 6·2 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현 교육감과 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를 한 박명기(53) 서울교대 교수를 체포했다. 검찰은 양측 간에 금품 거래가 있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곽 교육감의 측근 인사 K씨 계좌에서 박 교수 동생 계좌로 올해 2월 5000만원, 3월 4000만원, 4월 4000만원 등 모두 1억3000만원이 전달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박 후보에게 돈을 건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검찰에서 부르지도 않았고 얘기할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자 이날 경기도 가평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 워크숍에 참석 중이던 곽 교육감은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곽 교육감은 이 사건과 관련한 언급을 직접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신 공보관을 통해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끝나자마자 금품수수 의혹을 흘리는 검찰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결코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금품 전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교육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지난해 서울교육감 직접선거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선거는 후보 7명이 난립한 상태에서 치러졌다. 진보 진영은 곽 교육감(한국방송통신대 교수)으로 단일화했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6명이 끝까지 남았다. 6명은 이원희(전 한국교총 회장)·남승희(전 서울시 교육기획관)·김성동(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김영숙(전 덕성여중 교장)·이상진(전 서울시 교육위원)· 권영준(경희대 교수) 후보 등이었다.

 보수·진보 진영은 막판까지 단일화 진통을 겪었다. 진보 측 박 후보는 투표일을 2주 앞둔 지난해 5월 19일 곽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청화 스님 등이 서울 정동 환경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후보가 대승적 차원에서 용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박 후보는 곽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단일화가 이뤄진 시점은 박 후보가 후보 등록을 한 때였다.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 범시민추대위원회의 단일화 작업이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의 독선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단일화에 반발했던 박 후보가 독자 출마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은 지난해 4월 중순께 일찌감치 관련 단체들로부터 진보 단일 후보로 추천됐지만 박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선거 막판에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서울교육감 선거는 박명기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인쇄된 채 치러졌다. 투표일이 임박해 이미 제작된 용지를 바꿀 수 없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박 후보가 사퇴했음을 투표소에 공고해야 했다.

 박 후보가 공식 사퇴한 것은 지난해 5월 21일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후보 등록 때 교육감 후보들은 선관위에 5000만원을 기탁하게 돼 있다”며 “박 후보는 선거운동에 돌입한 시점에 사퇴했기 때문에 기탁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체육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나온 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중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98년 서울시 교육위원에 최연소(39세)로 당선됐다. 이어 2002년과 2006년 연이어 교육위원으로 선출됐다. 2004년 서울교육감 선거(간접선거)에 처음 출마했지만 공정택 후보에게 패했다. 올 5월 치러진 서울교대 총장 선거에도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박 후보가 계속되는 선거 패배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성탁·이동현·김민상 기자

◆공직선거법=헌법과 지방자치법에 의한 선거가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대로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한 법률이다. 후보자가 되지 않게 하거나 후보자에서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금품 등을 주고받은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곽노현 교육감이 측근의 금품 전달 사실을 알았다면 기소된다. 기소돼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교육감직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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