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이상한 공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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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에 뒤통수 맞은 경찰서장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이 24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시위대가 던진 김밥에 뒤통수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2시10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주민 100여 명이 해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뛰어나왔다. 이미 공사 현장 앞에서는 경찰과 주민들, 그리고 외지에서 온 시민운동가들이 엉켜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귀포 경찰서 경찰관 10여 명은 이날 공사 현장의 크레인 설치 작업을 방해한 강동균(54) 마을회장 등을 긴급체포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 그런데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이상하게 흘렀다.

 경찰은 시민운동가 이모씨 등 3명을 우선 차량에 태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하지만 강하게 반항하던 강 회장을 연행하는 데는 실패했다. 곁에 있던 주민들이 강 회장을 태운 차량 주변에 몰려들어 차량이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이다. 경찰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현장의 주민들은 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도로는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로 세워둔 차량으로 가득 들어찼다. 건설 현장 출입구인 강정교에선 주민 10여 명이 몸과 교각에 쇠사슬을 연결해 진압 장비의 투입을 차단했다. 경찰은 뒤늦게 400여 명의 경찰을 출동시켰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위세에 밀려 포위당한 형국이 됐다. 주민들은 촛불 문화제까지 열어가며 경찰과 7시간30여 분 동안 대치했다. 불법 행위를 한 사람을 연행하는 경찰 차량이 7시간 이상 시위대에 억류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오후 10시가 되자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시위대와 협상에 나서 “조사 후에 강 회장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주민들은 이 약속을 받아들여 해산했고, 강 회장은 경찰서로 향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을 지휘한 검찰이 강 회장에 대해 구속수사 지휘를 내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경찰서로 몰려와 밤샘 시위를 벌이며 거세게 항의했다. 경찰의 대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위대가 25일 오전 서귀포서 정문 앞으로 몰려오자 경찰은 문을 닫아걸고 경찰서 안에서 경비를 섰다. 이 바람에 경찰서 차량과 민원인 출입까지 봉쇄됐다. 이날 오후 2시가 되자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야 한다”며 다시 돌아갔다. 시위는 일단락됐지만 공권력이 바닥으로 추락한 현장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을 전격 경질했다. 송 서장을 제주경찰청 청문감사관으로 발령내고, 신임 서장으로 강호준 청문감사관을 임명했다.

  제주=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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